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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Apr 11. 2024

코끼리, 낙타 그리고 개선문

<뚜꺼삐 주식회사>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옛날에 받은 편지를 우연히 다시 읽게 되면서 나는 인생에 좋은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배를 타고 망망대해의 바다를 헤매다 만난 갈매기 같았다. 편지는 내가 후배 사원으로 고심하다 퇴사를 위해 휴가를 냈을 때 동료가 보낸 것이다. 그때는 읽지 못하고 얼마전 파일을 정리하다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긴 문장으로 나를 달래 주었고 고민에 대한 해결책도 담겨 있었다. 자신에게는 큰 상처가 남겠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소한 일이거나 아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현실만 바라보고 집착하는 태도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정글과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닌 한걸음 물러나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


현실에서 우리가 연습해야 하는 것이 한걸음 물러나서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두걸음 세걸음으로 늘려가야 한다. 시야가 넓어지면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도 더 넓게 바라보고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만 바라보고 일하거나 행동하는 것 이것은 어쩌면 집착일지도 모른다. 내가 미술을 막 시작했을 때 만난 선배가 해준 얘기가 생각이 난다. 선배는 공부가 아닌 그림으로 승부를 걸면서 대학에 여러 번 떨어졌지만 그림 실력만큼은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런 선배에게 그림을 배운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선배에게서 배우고 나면 아예 다른 그림을 그릴 정도로 실력이 느는 것이 보였다. 그런 선배에게 나도 잠깐이지만 운 좋게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선배는 나의 조급함을 눈치챘는지 그림에 대한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정글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시간이 가면 실력은 늘기 때문에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작은 도화지에 그릴 때는 조금의 연습을 하면 잘 그릴 수 있지만 운동장 같이 큰 데다 그림을 그리려면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물론 노력하면 어느정도 비슷하게는 그릴 수 있겠지만 원하는 경지로 잘 그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멀리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다면 옥상 또 필요하다면 더 멀리서 보면서 고치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나를 얼마나 후퇴시킬 수 있느냐가 결국 나를 얼마나 성장시키느냐가 되는 것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에 재미있어 한적이 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고 문을 닫는 게 기본적인 순서였다. 그리고 하마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도 있었다. 순서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과 같지만 하마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서는 먼저 냉장고에 들어 있는 코끼리를 꺼내야 했다. 그때는 그게 재미있고 냉장고만 크다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의 배려가 없이는 실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크게 성장하면서 집들을 예전처럼 자유롭게 방문하거나 탐험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코끼리에게도 상대에게도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한발짝 멀리 설 수 있게 하는 지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코끼리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냉장고 대신 운동장만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 냉장고처럼 차갑게 닫혀 있는 문과 바늘 구멍처럼 작고 답답한 문이 아닌 모두가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어릴 때는 친구의 집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우리집에서 놀다 재미가 없으면 친구집으로 갔고 그러면 그곳에는 새로운 놀거리가 있었다. 숨바꼭질을 하면 한번도 열어 본적 없는 옷장이며 다락방, 창고, 심지어는 뒤뜰로 들어가 숨었다. 소심한 친구는 담장 뒤나 마당 구석에 숨어 발각되지만 깊이 파고든 고수는 주인도 모르는 곳에 숨기에 찾지를 못한다. 숨바꼭질이 재미없으면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때면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로 재미를 더했다. 토요일이면 원정 경기를 하러 가듯 멀리 사는 친구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학교를 마치면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이끄는대로 따라 갔다. 그러면 목적지까지 곧장 가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심심하게 걷지도 않았다. 앞서 가는 친구가 하는 대로 따라하며 걸었고 버스 정류장과 정자가 나오면 거기서 놀았다. 다리를 건널 때는 난간에 매달리거나 머리를 내밀기도 했고 물에서 한참 놀고 나서야 친구집으로 갔다. 어릴 때는 친구집에서 잘 때도 많았는데 이젠 이것이 추억이 되어 버렸다. 물론 나의 아이들이 친구집을 가고 또 거기서 잠도 자기도 하지만 내가 막상 내가 그렇게 할 곳은 많지가 않은 것 같다. 가까운 사이라도 집보다 바깥에서 만나는 게 편하게 느껴지면서 언제고 찾아 갈 수 있는 친구 같은 집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 문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막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열기 위해서일까? 문이 두가지 용도를 다해야 하는 것은 맞겠지만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열림을 선택할 것 같다. 나의 생각으로는 문 역시도 우리가 만든 것이니 관계를 위해 태어나고 만들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는 하나쯤 상대를 위한 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상대만을 위한 문도 좋고, 누구나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문도 좋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문도 좋을 것 같다. 기존의 문과 다른 문이 생기고 이 문이 열린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가? 이렇게 만들어진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 역시 감동으로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집이 새로운 세상으로의 관문으로 느껴질 것 같다. 마치 개선문처럼 말이다. 죠조하우스에는 조조를 위한 개선문이 있다. [이미지 출처: 죠죠하우스 by 아틀리에 이치Atelier 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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