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b 하우스 Apr 04. 2024

반전에 반전이 더해지듯 날 더하다

<뚜꺼삐 주식회사>


모든 것에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만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위해서는 왕자와 거지가 같은 외모로 만나야 하고, 왕자라도 개구리로 변신해 공주를 기다려야 하고, 한 명이 지킬과 하이드로 배역을 바꿔가며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반대되는 것을 억지로 찾아 갖다 놓은 듯 커다란 모순 덩어리이지만 개구리에게 키스를 하듯 눈 한번 딱 감고 대한다면 재미난 것 투성이다. 그런데 이런 반전의 스토리는 믿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을 무시하거나 간과할 대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퇴근길에 마주하게 되는 대로변의 키오스크 앞에는 항상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곳이 로또 명당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줄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다. 줄이 길다 보니 이것에 대한 유혹도 더 크지는 것 같다. 나 역시도 ‘나도 한번 사볼까?’하는 생각과 ‘나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자신감이 샘솟는 것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만큼 현실에서 반전을 기대하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는 것 같다. 결론인 즉, 우리가 꿈꾸는 반전에는 남녀노소의 구분도 장르의 구분도 없는 것 같다.  


반전을 하나의 새로운 기회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죽지 않고 잠드는 정도라면 독이든 사과를 한입 베어 물어보고, 다쳐서 정형외과에 입원하지 않는 정도라면 유리구두를 신고 도망치듯 달려봐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공포와 걱정은 우리의 꿈과 바램을 입구컷을 시켜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공포를 극복하고 통로를 통과하고 나면 이것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반전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위로가 있고, 함성이 있고 또 자신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시작이 재난 무비나 호러 무비가 아니라면 미리 놀라고 도망쳐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개구리와 키스할 필요는 없지만 한 마리 정도는 키스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반전을 꿈꾼다면 개구리로 변신해 보는 것은 또 어떨까? 나는 좀 더 용기를 내어 개구리에서 뚜꺼삐가 되기로 했다.


내 이름은 뚜꺼삐. 예쁘지 않은 이름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릴 적 이렇게 불렸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이 돼지로 더 많이 불렸지만. 그때는 비가 올 때 그것도 가끔 마당이나 골목에서 뚜꺼삐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연히 뚜꺼삐라도 발견하는 날에는 어디가 닮았는지 궁금해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나와 닮은 데는 1도 찾을 수 없었다. 목소리가 닮았나 들어보려 했지만 나는 뚜꺼삐가 우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눈으로만 보던 것에서 나중에는 만져도 보고, 들어도 보고, 등까지 쓰다듬어 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도 뚜꺼삐는 울지도 달아나지도 않았다. 아마도 이렇게 느리고 무뚝뚝한 것이 나와 닮았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왜 우리가 ‘뚜꺼바 뚜꺼바’하고 노래를 부르는지 모른다. 뚜꺼삐나 개구리 같은 양서류가 집을 짓기나 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마저 든다. 그런데 ‘뚜꺼바 뚜꺼바’로 부르는 이 노래가 우리가 태어나서 부른 인생 첫 주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얼마나 당돌한 주문인가? 이것은 주문이라기 보다 명령이나 강압에 가깝기 때문이다. 내게는 마치 후미진 골목에서 짝다리를 집고 껌을 소리나게 씹으며 삥 뜯는 깻잎 머리를 한 여학생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뚜꺼삐의 성별을 조사해 보니 정황상 암컷이었다.) 이 시기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에서도 공손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열려라 참깨’, ‘금나와라 뚝딱’하면 되는 것이지 주문에 앞서 Excuse Me나 Please 같은 것은 없다. 어쩌면 이 주문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이것을 개의치 않거나, 동물 사물 도깨비 같은 것에는 원래 존칭이 붙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문을 들어주는 상대 역시 공평해야 맞을 것 같다. 누가 어떻게 빌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똑같이 받아들여지는 게 맞을 것 같다.


세상엔 만병통치약도 만능키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꿈꾸는 소원 한가지쯤 마법처럼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런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마법의 공간이 몇 군데 정해져 있어도 좋을 것 같다. 힘들게 줄을 서거나 기다릴 필요가 없는 자정 무렵 손님이 없는 지하철역 한적한 구석도 좋고, 수업이 없는 토요일 점심시간 학교 앞 작은 문방구 안이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만병통치약과 만능키를 팔 것 같은 시골의 옛날 장터에서 펼쳐지는 마술 속에 들어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꼭 거대하고 화려하게 마술같이 펼쳐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이런 소원은 옛날 방식으로 나타나도 좋을 것 같다. 오래된 TV가 나오지 않으면 여기저기를 두드리거나 지붕에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으로 화면이 고쳐지고 주파수를 찾아도 괜찮을 것 같다.


나의 생각은 꿈을 찾거나 막힐 때는 이것을 뒤집어 보는 것이 또다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세련되게 해결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에는 반대로 유치하게 해보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어려운 문제가 솔로몬과 콜롬버스가 한 것처럼 줄을 잘라 풀어버리거나 계란을 깨뜨려 세우는 것으로 새로운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뚜꺼삐가 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뚜꺼삐 같은 회사를 만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세상을 뒤집어 보는 것으로 청개구리가 못하던 것을 작게나마 실천해 보려 한다. 뚜꺼삐로 하나의 웃음, 하나의 약 그리고 하나의 열쇠가 되기를 바라고 꿈꿔본다.



# “새로운 시작에 저희가 긍정적인 도움이 된다면 좋겠네요^^”하고 고마운 답장을 받았다. 이것은 내가 뚜꺼삐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업체에서 받은 첫번째 회신이었다. 막연하게 느껴졌던 일에 고마움이 느끼게 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의 무대로 발돋움을 하게 해주었다. 고마움은 디딤돌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준다. 여기에 담겨 있는 배려가 불편함과 부담감을 없애 주면서 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디딤돌이 공중에 붕 떠있는 공간으로 올라서게 하는 것이다. 변화가 시작되는 곳 그 특별함을 담고 있는 곳이 계단인 디딤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것이 가벼우면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한다. [이미지 출처: 죠죠하우스 by 아틀리에 이치Atelier ITC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