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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Apr 18. 2024

선으로 기억되는 것들에 고한다

<뚜꺼삐 주식회사>


건축가를 찾고 컨택하는 일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 버렸다. 나는 건축사사무소(사실 건축사무소로 알고 지내다 최근에야 정확한 명칭을 알게 되었다.) 사이트를 찾아 여행을 한다. 말이 좋아 여행이지 사실 방황에 가깝다. 이것에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르는 시골길을 걷는 듯한 기분일 때도 있고 아무 곳을 땅속 깊이 파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건축가가 업무를 보는 장소는 다양하게 불린다. 건축사사무소부터 건축사무소, 건축, 스튜디오, 공방, 랩, 아뜰리에, 어소시어츠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엔 이것을 구분하고 나눠 볼까도 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이렇게 다양하게 불리는 이름들이 좋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는 것이라 타고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타고 나는 것은 그대로 두더라도 자신이 만들거나 누리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정겨워 좋다.


여기에는 우아한 영문 이름도 좋고 촌스런 이름을 골라 넣어도 좋다. 무엇이든 나중에는 이것이 나의 귀한 자식이 되고 또 나는 엄마 아빠가 된다. 내가 가져보지 못한 이름들을 마음껏 가져 보는 것이다. 바야흐로 이름이 갑이 되게 하고 이름값을 하게 해보는 것이다. 이름에 무게를 실을 수도 있고 세상에 하나뿐이 없는 것으로 부를 수도 있다. 두개의 단어를 엮어 뜻이 통하게 할 수도 있고 이것에서 쎈놈을 가져다 묶어 부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복잡한 게 싫다면 이름만 남기고 싹~ 다 지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에 원조니 할매니, 명가니 본가니, 서울부터 부산까지 다 갖다 붙인다고 해서 특별해지는 것도 아니고 맛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별것 아닌 것이지만 난 이것이 불편하다. 외국인이 보고 놀란다는 ‘할머니 뼈해장국’ 정도는 아니지만 육수를 내기 위해 뼈와 긴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좋거나 쉬워 보이는지는 않다. 오히려 이상한 이름이 이런 노력들을 상쇄시키는 듯하다. 그런데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건축을 사진으로 보고 있으면 비슷한 불편함이 있다. 정성스레 디자인하여 세상에 나온 것을 온전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여기저기에 전선들이 난무하다. 전봇대와 전선들이 하늘을 채우면서 어렵게 디자인한 건축이 가려져 있다. 전봇대에 비스듬하게 걸려 있는 전선 역시도 뭉친 실타래를 늘려 놓은 듯 눈을 괴롭힌다.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면 화면에 비가 내리고 치지직하며 무서운 전기 소리를 내고 있는 듯하다. 전봇대가 사라져야 할 명분이 내게도 생긴 것이다. 마치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선을 그어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을 칠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에는 처음 그렸던 선들이 사라진다. 이렇게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완성한 건축 주변에 남아 있는 불편한 선들도 지워지게 하면 좋겠다. 디자인이 주변의 경치까지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전봇대 지하주의와 건축가 지상주의 말이다.


선 때문에 난감해하거나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게는 사진이 그러하다. 필름 카메라를 쓰던 때 느꼈던 기억 정도로 생각했는데 디지털 시대인 현실에서도 이 일을 똑 같이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은 마치 내가 어릴 적 꾸었던 악몽처럼 나타나 괴롭힌다. 어릴 때 몸이 아파 약을 먹고 누워 있을 때면 환각에 빠져 악몽을 연이어 꾸곤 했다. 실에 매달린 거대한 추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게 다가오는 꿈이었다.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이것을 지켜봐야 했는데 선이 무섭게 느껴졌다.


중학교 수학여행이 생각난다. 친한 친구들과 모여 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본론인 여행보다 더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가 싸주고 메어주는 가방을 가지고 가서인지 이것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모든 것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중학교 수학여행은 달랐다. 심장이 뛰는 게 당연했고 그중 1순위 준비물은 카메라였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이라 사진관에서 필름을 사고 인화를 맡기는 조건으로 카메라를 빌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것으로 여행이 180도 바뀌었다. 문화재 답사를 위해 떠난 수학여행이 우리의 화보 촬영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진 찍을 스팟을 찾고 온갖 포즈를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기쁨은 여기까지. 사진을 인화하고 나면 아쉬움이 느껴졌다. 대여받은 카메라가 문제가 있었는지 인화한 사진에는 선명하게 줄들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신혼여행 때 찍은 사진에서도 똑 같은 줄이 나타났고 몇 장이지만 파일에 손상이 가면서 외장하드에 보관해 놓은 사진에도 보기 싫은 줄이 생겼다. 선들이 필름과 사진 위에 줄을 긋듯 이것을 대하는 나의 마음 역시도 상처를 남겼다. 선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긴다. 이러한 불편한 선들이 사라지는 건축가 지상주의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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