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들풀언덕 _ 부모와 살던 집을 기억으로 남기며
마치 사건은 평범하게 시작되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영화에서의 오프닝과도 같은 묘함과 암시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게 인상 깊은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포레스트 검프>에서 하얀 깃털이 바람에 날리며 하늘 위 이곳저곳을 날아 다니다가 버스 정류장 벤치에 있는 주인공의 낡은 운동화에 앉는 모습입니다. 내게 깃털은 가볍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존재로 비쳐졌고 그가 신은 낡은 운동화는 그만큼의 많은 사연과 여정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몽실이가 집을 나갔습니다. 갈색 무늬의 하얀 강아지 몽실이는 십 수년간 부모님 집을 지키며 가족들에게 많은 얘기거리와 즐거움을 주던 존재였습니다. 잠깐의 쇼 정도로 생각하며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게 되면서 가족들의 아쉬움을 가중시켰습니다. 예정도 없이 찾아오고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항상 이를 대하는 건 쉽지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이날 동네에서 처음 보는 검은 강아지가 집 앞에 나타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몽실이 혼자서 산책을 할 수 있게 목줄을 풀어주곤 했기에 이날도 아버지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잠깐 같이 놀고 오라며 내보냈다고 합니다. 몽실이가 몇 번의 지각을 했기에 처음엔 많이 신경 쓰지 않았지만 몇일을 넘어 몇 주가 흐르면서 걱정에 더해 만감이 교차하게 되었습니다.
“몽실이! 산책하러 가고 싶니? 그래, 30분만 놀고 와라!”하고 내보내면 시간을 맞춰 돌아오는 몽실이는 항상 어머니의 칭찬 1호였습니다. 이런 몽실이가 한번은 사고를 제대로 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함께 모인 가족들 앞에서 보인 몽실이의 똑똑함 테스트가 허무하게 실패해 버린 것입니다. 30분만에 돌아와야 하는 산책 시험에서 몽실이는 어머니의 기대를 뒤엎고 배짱 좋은 태도를 취했습니다. 몽실이는 30분이 아니라 해가 지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삼 일째 되는 날 어머니 친구분이 아침 걸음으로 오셔서 자기 강아지 집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이번에도 몽실이의 배짱을 기대하며 친구가 있는 다른 집으로 찾아가지 않았을까 여기저기를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시간이 한달을 훌쩍 넘기면서 희망마저 공허 해져 버렸습니다.
우리 가족이 처음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내가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시내에 살고 있는 친척인 동열형이 애지중지 하던 강아지를 더는 키울 수 없게 되자 시골인 우리집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형은 하얀 강아지를 옷가슴에 감싸 안고 시골 마당으로 들어와서는 돌아가지 못하고 긴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형은 하얀 쫑을 안고 한참을 쪼그려 울다 돌아서기를 수없이 반복했고 동네 초입까지 나가서는 끝내 그냥 가지 못하고 육포를 사서 정성스레 쫑에게 먹였습니다. 떠날 때 자주 보러 오겠다고는 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는지 동열형은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나와 동생은 쫑이 오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특히 우리에겐 겨울의 추억이 많습니다. 그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때도 늦은 겨울이고, 쫑을 안고 마당에서 가족 사진을 찍은 때는 이른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섯 마리의 하얀 강아지를 낳는 그날도 눈이 오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하지만, 쫑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은 많이 길지 않았습니다. 나는 동물이 죽을 때가 되면 어두운 곳을 찾아 들어간다는 것을 그때 경험했습니다. 어느 겨울날 뿌려 놓은 쥐약을 먹고 사라지면서 몇시간 만에 윗동네 후미진 나무더미 밑에서 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어두운 구석에서 공포에 떨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깊숙이 숨어 있는 쫑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쪼그리고 앉아 나도 동열형이 그랬던 것처럼 울고 또 울었습니다. 형도 그때 쫑과 헤어지면서 다시 못 본다는 걸 아마도 알고 그렇게 울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준비도 없이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쫑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가족이 모여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몽실이 얘기가 나오곤 합니다. 그러면, 이야기는 항상 궁금증에서 미안함으로 기웁니다. 부모님들은 부모님들 대로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면서 몽실이 기르기가 힘들다고 여러 번 얘기한 것을 미안해 합니다. 우리는 우리 대로 부모님에게 편안한 아파트로 이사 하는 걸 권했던 터라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가 이사 간다고 하니까 스스로가 부담 지지 않으려고 그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감이 교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