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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자리

생활

by 하모남


옛 속담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빈자리는 숨기려고 해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아내가 없는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느꼈다.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 것만이라도 행복이다. 물과 공기가 늘 옆에 있어 소중한 것을 모르듯이... 아내가 늘 옆에 있으니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부부는 서로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서인지 '있을 때 잘해'라는 대중가요가 떠 올랐다. 늘 옆에 있던 사람이 없으니 너무 허전했다. 아내와 30여 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떨어져 있는 시기가 언제였던가. 전방에서 2차 중대장시절 철책선을 담당하는 시기에 6개월을 떨어져 살았다. 그 이후 가끔 교육을 위해 5일 정도 떨어져 있는 날들이 있었다. 그 외에는 아내와 떨어져 있던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지난 주말 일이 있었다. 멀리 떨어져 공부하는 큰아이가 전화가 와서 몸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순간 깜짝 놀랐다. 무거운 것을 들다가 허리에 통증을 느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너무 아프다는 것이었다.


집 떠나면 몸 아플 때가 가장 서럽다 고 하지 않던가. 큰아이 성격에 웬만큼 몸이 아파도 전화를 하는 아이가 아니기에 더욱 놀랐다. 그날은 주말인 데다 작은 아이의 생일날이어서 아침부터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라 여유 있게 마트에서 시장을 보는데 전화가 왔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가 오니 몸이 많이 아프다는 것을 짐작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고속버스표를 예매했다. 오후 6시반차였다. 전주에서 울산까지 는 4시간 거리다. 아내를 밤에 먼 곳으로 보내는 마음도 편치 않았다. 몇 번 승용차를 타고 다녀온 적은 있었으나, 혼자 가는 길은 처음이었다. 초행길이고 깜깜한 밤에 아내 혼자 가는 것이 걱정이 되었으나, 아내는 저녁에 급하게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시간에 맞추어 태워 주었다. 아무쪼록 아이 간호를 잘하고 안전하게 다녀오라고 배웅하며 아내와 헤어졌다. 장마가 북상 중이라는 소식에 비도 부실 부실 내리는 밤길이라 더 걱정이 되었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멜 것을 당부하고 떠나보냈다.


울산의 간이 정류소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 다음에야 안심이 되었다. 큰아이는 몸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인다고 하니 내심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병원을 다녀왔다. 이곳저곳 진료를 받고 주사와 약을 먹으니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일요일에 간 아내는 목요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5일간 집에서 사는데 집안 살림이 쉽지 않았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집안 청소를 하고, 집에서 공부하는 취준생 작은아이 뒷바라지까지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집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는 큰소리도 날이 갈수록 작아졌다. 나도 자리를 옮겨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라 몸도 피곤했다. 평소 아내의 집안일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내가 준비해 놓고 간 국이며 반찬이 떨어질 때가 되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서 작은아이를 먹일까 걱정이 들었다. 평소 음식을 자주 하는 데에도, 매일 하는 것과 가끔 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내가 떠난 지 3일째 되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김치찌개와 달걀 프라이를 준비했다. 다행히 작은아이도 아빠의 김치찌개가 맛있다며 엄지 척을 해 주었다. 집 떠난 지 5일째 되는 날 퇴근을 하니 아내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너무 기뻤다. 큰아이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엄마 노릇하느냐 너무 고생했다고 아내를 위로해 주었다. 큰아이도 멀리서 엄마가 와 주어 너무 고맙다는 말을 연실 했다고 한다. 과연 부모란 무엇인가. 내가 세상에 낳은 자식을 무한으로 사랑하고, 그 아이들이 필요할 때에는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존재가 부모가 아닌가. 아내도 빨리 가기를 잘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모정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더 나이가 들어 아내나 내가 혼자 세상에 남는 날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니,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과 공기처럼 늘 함께 있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가끔은 떨어져서 사는 것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일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다가 올진 아무도 모른다. 지금 같이 옆에는 있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아침이다. 함께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꾸는 오늘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다. 더 열심히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오늘을 만들어 가야겠다. 오늘이 좋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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