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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설렘

추억

by 하모남


시간은 돌고 돌아 또 한 해가 가고, 음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라는 동요를 부르며 설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지금처럼 풍부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음식이 풍족한 설날이 더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또한 새 옷과 새신이 기다려졌다. 설날을 기다리는 동안 어린 마음은 그야말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1970년대 국민학교를 다녔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새북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가 온마을에 울려 퍼지며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시절이었다. 온 국민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구호가 온 나라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던 시절이었다. 온 국민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자신감으로 가득 찬 때였다. 집집마다 많은 형제, 자매들로 동네 골목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한 집에 다섯여섯 명은 기본이고 심지어 많은 집은 열명이 넘는 집도 많았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다. 많은 자녀들 틈에서 부족한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머님은 항상 분주했다. 동네 어귀 빨래터에는 아이들이 후질러 놓은 옷을 세탁하느냐 늘 뿜볐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을 하러 나가시는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이었다. 부모님의 정성과 근검절약으로 살아온 가난하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이 빛바랜 추억의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가족들이 풍족하게 먹고살기 위해 우리 부모님들은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하셨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우면서도 눈물이 난다. 시골에 개구쟁이 아이들은 집안 형편에 따라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면 시내 방직공장에서 주경야독을 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 누님들이다. 누님들은 열심히 돈을 벌어 동생들을 가르치고 집안을 일구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 그래서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까지 있었던 시절이다. 누님들은 동생들의 공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다. 그런 누님들의 희생 덕분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가정 형편이 점점 좋아졌다. 모든 것이 감사이고 덕분이다. 그런 덕분에 고등학교와 대학 공부의 배움은 더 큰 인생의 기대와 설렘이 되었다.


배운다는 것은 모르는 세상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배움은 지식과 지혜를 가르쳐 주어 좀 더 멋진 인생길을 열어 주는 수단이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아는 세상은 정말 작은 것에 불과하다.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움을 통해 얻었다.


누구나 하루를 산다는 것은 처음 가는 길이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오늘을 우리는 헤쳐나가는 것이다. 학교를 가고 직장을 구하고 배우자를 만나, 아이들을 낳아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것 역시 처음이다. 누구나 처음은 서투르고 부족하다.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세상과 부딪칠 때 세상은 한번 살아 볼만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내일 미래에 어떤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렇다고 항상 불안해하며 걱정을 해서는 안된다. 걱정을 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미래가 걱정이 된다면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오르지 현재만 있을 뿐이다. 걱정을 떨쳐버리고 기대와 설렘으로 오늘을 살자. 기대와 설렘이 있다면 오늘에 더욱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수많은 날들을 공부에 매진한다. 그러나 막상 직장에 들어간 후에는 일에만 몰두하지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는 게을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순의 나이에 가까워 오니 공부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살기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진정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하는 순간 내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나이 들어 공부하는 분야는 어떤 분야이든 상관이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인문학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오랜 세월 세상을 살면서도 그저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 것이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기대와 설렘보다는 불안과 걱정 속에 반평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젠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여 불안과 걱정보다는 기대와 설렘 속에 살아가는 방법에 몰두해야겠다. 기대와 설렘 속에 살아가는 인생이야 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기대와 설렘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 자신이 찾아가야 하는 길이다. 여행을 앞든 사람처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사람처럼,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찾는 사람처럼 깊은 호기심으로 무한한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 기대와 설렘으로 나만의 인생길을 살아가야겠다. 그것의 정답은 독서와 글쓰기에서 찾아야 한다. '독서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인생의 스승을 만나는 독서에 더 큰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은퇴 후에 가장 좋은 취미가 도서관 출근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대와 설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오늘이 좋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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