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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자리

생활

by 하모남


결혼을 한지 올해로 3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큰아이가 내년이면 결혼을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렇게 젊고 팽팽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머리숱은 줄고 얼굴엔 주름이 늘어, 세월의 흔적이 온몸 구석구석에 남고 있다. 요즘따라 늙어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만 늙어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내 옆을 지키는 아내도 흰머리가 늘어나고, 그 곱던 처녀는 중년의 아줌마가 다 되었다. 남의 귀한 집 처자를 데리고 와 호강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고생만 시킨 것이 아닌가 하며 안쓰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껏 남편 내조 잘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 주었으니 그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사랑으로 결혼하였으나 이젠 정과 의리만 남는다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아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짠하다. 지금껏 전업주부로 남편과 아이들 곁에서 조용히 뒷바라지를 했다. 외부활동도 열심히 하고 활동적으로 생활했으면 좋으련만, 오르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았다. 덕분에 따듯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아이들도 잘 자라 주었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아내 덕분에 항상 가정에는 온기가 넘쳤다. 늘 밝고 긍정적이어서 가정이 편안했다. 그러던 아내에게 일이 생겼다.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가 다친 것이다. 지금껏 큰 사고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 온 터라 아내의 사고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시월 아버지를 하늘로 잘 모셔드리고, 삼우제날 산소를 찾았다가 배수로 덮개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발목을 다쳤다. 그날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추석날 아침이었다. 발목이 퉁퉁 붓고 절룩거리며 잘 걷지도 못했다. 간신히 삼우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아이와 전화 통화를 했다. 큰아이는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추석날 병원을 운영하는 정형외과를 찾아 보내왔다. 아내와 나는 차를 달려 전주의 있는 병원으로 갔다. 추석날인데도 환자들이 만원이었다. 지역에서 꽤 규모도 있고 운영이 잘 되는 병원이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바로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발목이 부은 정도를 보더니 골절상이라며 CT사진을 찍어 보자고 했다. 사진을 찍고 잠시 후 의사 선생님께 가니, 왼쪽발목뼈가 선명하게 부러져 있었다. 우리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뼈는 부러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내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병원에 간지 2시간이 지나 바로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고 다음날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수술 후 아파하는 아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움직일 수 없으니 모든 뒷바라지는 내 차지였다. 지금껏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옆에서 간호하는 나의 모든 것이 서툴렀다. 그래도 정성껏 아내 옆에서 간호를 했다. 집으로 와서도 모든 일은 내 차지였다. 바삐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보며 아내도 미안한 감이 드는 것 같았다. 그동안 못 쉬었으니 이 틈에 아무 걱정 말고 회복될 때까지 푹 쉬라고 말해 주었다. 이제 아내가 수술을 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이젠 어느 정도 집안일에도 적응이 되었다. 아내가 누워 있는 동안 집안일을 하며 좋은 마음으로 하기로 마음먹으니,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하고 있다. 평소 집안일이 그렇게 많은 줄을 몰랐다.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점심때가 되고, 점심을 먹고 나면 또 저녁식사 때가 되었다. 하루에 삼시새끼를 챙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국이나 찌개도 번갈아 해야 하고, 빨래도 수시로 해야 했다. 가끔 음식물 쓰레기나 집안 쓰레기도 치워야 했다.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며칠만 치우지 않으면 집안 이곳저곳이 어지럽고 지저분 해졌다. 내가 직접 집안일을 해보니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동안 아내의 노고에 저절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2주 후에는 깁스를 풀어도 된다고 한다. 한 달 만에 CT촬영을 하니 잘 아물고 있다고 하여 안심이 되었다. 이번일로 아내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좀 더 집안일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따듯한 집안 온기는 아내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이 들어가며 아내와 단 둘이 남는데, 좀 더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아야겠다. 장모님과 처형, 처남댁이 아내가 다쳤다고 하니 한 걸음에 달려왔다. 먼 곳에서도 잊지 않고 와 주신 것에 고맙고 감사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말없이 찾아와 줄 수 있는 부모형제가 있다는 것에도 너무나 감사했다. 나도 좀 더 사람 노릇을 하며 따듯하게 살아야겠다는 것도 느꼈다. 이제 양가 부모님 중에 장모님 한분만 남아 계신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해 드려야겠다. 떠나고 나면 후회가 되는 것이 세상살이가 아니던가. 깁스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더 건강해야겠다는 생각과, 사는 동안 더 따듯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사람이 떠나면 그 사람의 향기가 남는다고 한다. 더 좋은 향기로 남을 수 있도록 평소에 더 열심히 배려하며 살아야겠다. 오늘이 좋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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