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아름다운: 오감으로 만나다
손잡이 있는 바구니를 든 아이들이 나왔다.
오늘은 어린이집 텃밭에서 아이들이 장 보는 날
한 손엔 친구의 손을 잡고 한 손엔 작은 바구니를 암팡지게도 들었다.
초보 텃밭러는 오늘 같은 날을
대목이라 부른다.
오이도 따고,
토마토도 따고,
고추도 따며 서로 많이 가져 가겠다고 밭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고추와 토마토는 어른의 도움 없이도 혼자 수확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열매를 잡고 똑하고 힘을 주기만 하면 바로 딸 수 있다.
그러나 오이는 가시도 있고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거나 줄기가 억새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저기서 "원장님 도와주세요 원장님 잘 안 따져요" 노랠 부른다.
이런 탓에 텃밭에서 막춤을 출 만큼 신이 난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닐까
한때는 텃밭 교육을 하며 회의감에 들 때가 많았다.
텃밭에서 모기에 물려 퉁퉁 부은 아이가 있을 때
선생님들이 텃밭에 대한 관심이 없을 때
초보 텃밭 원장의 얼굴에 기미가 도드라질 때
그래서 어느 해는 정말 텃밭을 안하리라, 안 하고야 말 리라 하고 다짐을 했더랬다.
도대체 나는 누구를 위해 이 텃밭을 생고생하며 유지해야 할까
아이들이 수확한 토마토, 오이맛고추와 오이를 깨끗이 씻어 둔다.
내일 이것으로 <천국보다 아름다운 피클>을 만들 예정이기 때문이다.
퇴근 전 아삭한 양배추 세 통과 적채 다섯 통을 추가로 구입하고
피클에 넣을 피클링스파이스를 사두었다.
아이들은 오늘은 뭐 만들꺼냐며 집에서 준비해 온 유리병 하나씩을 내민다.
오늘 이 통에는 아름다운 색깔이 듬뿍 담긴 피클을 담아 갈 예정이다.
어느 아이는 자그마한 통을 가지고 오기도 하고, 어느 아이는 깜빡 잊고 안 가지고 와서 어린이집 통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느 아이는 아주, 아주 큰 통을 슬며시 내밀기도 한다.
이제 아이들이 열심히 칼질을 할 시간이다.
어제 열심히 수확해 둔 고추를 4등분으로 잘라 본다.
토마토는 즙이 나올세라 천천히 익숙하게 쓱쓱 잘라 2등 분한 후 볼에 담아둔다.
오이는 동글동글하게 제 모양 그대로 잘라둔다.
텃밭 작물로 요리를 하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가 방긋 웃는 모습으로 내게 묻는다.
원장님
우리 지금 진~~ 짜 진짜 열심히 일하는 거 같은데
근대 이상하게 왜 재밌지?
순간 빵하고 웃음이 터져 같이 깔깔거리고 말았다.
노동을 하는 것 같아서 왠지 신경 쓰이고 힘이 드는데
희한하게 재미있고 빠져든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원장의 가스라이팅(?)을 의심한다고나 할까?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신이 바짝 난다.
그래 '나 정말 잘하고 있구나'
그깟 기미쯤이야
점점 채소에 스며드는 아이들의 눈매
채소 본연의 맛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썰어둔 채소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아이들의 입술
토마토를 잘라 질컥거리는 속살을 만져가며 느끼는 촉감
고추를 4등분으로 잘라 살짝궁 냄새를 맡아보는 코
오이 자르며 아삭거리는 소리를 통해 이거 되게 싱싱하다고 말하는 그들의 예민한 청각
삐뚤빼뚤 썰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채소와 우리가 너무 멀리 있지만 않으면 된다.
그냥 채소가 우리고 우리가 채소이면 된다.
이 모든 채소가 어우러져 <천국보다 아름다운 피클>이 완성되었다.
그 빛깔이 입에 과즙을 한가득 물고 있는 것처럼 청아하고 시원하다.
다 준비된 채소에 식초 1:5, 물 1:5, 설탕 1:5, 소금 1을 넣고 바글바글 끓인 후 아이들이 썰어둔 채소에 붓는다. 부은 식초물이 식으면 아이들이 준비물로 가지고 온 올망졸망한 통에 담으면 오늘의 미션은 끝!!
아이들은 모두 피클 통을 끌어안고 엄마랑 아빠랑 먹을 거라며 기대가 한가득이다.
과연 아이들의 입맛에 맞을지 사실 약간의 염려가 된다.
하지만 안 먹더라도 못 먹더라도 나는 믿는다.
부모들이 맛있게 먹는 그 모습을 통해 본인의 노력이 들어간 이 피클을 먹는 그 순간이
천국 같다고 느낄 것을
이 더운 여름,
부디 천국보다 아름다운 피클을 아이들과 함께 담가보시길
청량하고 개운한 아름다운 색깔의 예술품을 만들어 보시길
그래서 초보 텃밭러 원장은 올해도 아마 내년도
이놈의 텃밭을 때려치우지 못한다.
대목의 맛을 너무 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