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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Aug 09. 2023

무늬만 멸치

나는 무늬만 원장인가.  진짜 원장인가

 [몹쓸 워킹맘의 모성애]


  방학을 맞아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우던 딸아이가 퇴근한 날 향해 외친다.

"엄마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퇴근을 했건만 엄마의 컨디션은 아랑곳하지 않고 딸은 당장 오늘의 저녁 반찬만이 궁금할 뿐이다.


'에고... 이 몹쓸 모성애...'


모성애란 여성이라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도 있고,

아니다, ‘후천적으로 엄마가 하는 행위를 보며 답습하여 생긴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어쨌든, 모성애가 충만한 워킹맘은 피곤한 기색을 틈도 없이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한다.

햄과 고기를 넣고 김치볶음을 하고, 아침에 볶아둔 오징어채를 식탁에 놓고,

단무지에 고춧가루를 살짝 넣고 통깨 살살 뿌려 들기름 한 숟가락 넣어 무치고

밥 먹자고 했더니 반찬을 살피며 영 불만인 얼굴로 식탁에 앉는다.


콩나물 국밥이 먹고 싶단다.(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뜨거운 것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왔다. 열심히 일하니까 엄마는 밥맛이 꿀맛이라며 너는 배가 안 고픈 거 같다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한편으론


아이를 향한 워킹맘의 아킬레스건 같은

세트 감정,

'미안한 마음'"불쌍한 마음'

불쑥 들었다.

딸아이가 엄청나게 비싼 음식을

먹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콩나물 국밥을 먹고 싶다는데

그걸 못해줄까




국밥의 국물을 우려내려고 멸치를 찾는데...

아고야 국물 멸치가 똑 떨어졌다.


마침 남편이 마트에 갈 일이 있다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는 소리에 냉큼 기다렸다는 듯이

 “국물용 멸치 한 박스랑 콩나물 1 봉지 그리고 두부”를 주문했다

‘아이고 오늘 밤은 멸치 똥이나 따야겠구나...’  



[난 똘똘한 멸치가 좋다]   

 

십여분 후 마트 갔던 남편이 박스로는 팔지 않는다며 500g짜리 멸치 세 봉지를 내밀며 똑같은 500g인데 하나는 8,600원이고 두 봉지는 각각 2,800원이라며 신기하다고 다.


얼핏 보니 겉모습은 비슷한데

가격이 너무 차이가 나니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주인이 가격표를 잘못 붙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횡재인 건가?


먼저 비싼 멸치의 봉투를 뜯어

멸치 똥을 따기로 했다.

멸치가 색이 선명하고 똘똘한 게

똥도 똑 떨어지고 손질하기에

어렵지 않아 금세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싼 멸치 두 봉지였다.

뜯어보니 멸치 껍질도 흐물흐물 벗겨지고, 멸치 몸도 부스러지고 그리고 똥도 깨끗하게 손질이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비린내가 진동했다.

 

더욱 가관인건 비싼 멸치 한 봉지 500g과 싼 멸치 두 봉지 1000g을 손질한 양이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싼 멸치 두 봉지가 비싼 멸치 한 봉지 보다 더 양이 많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싼 게 비지떡임을 마주하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싼 개 비지떡이라는 말을 하는구나~’


결과적으로 상품 가치가 있는 내실이 단단한 똘똘한 것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모습은 멸치라고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니 국물 멸치로 쓰기에도 많이 부족해 보이는

무늬만 멸치인 듯하다.



 

  이렇게 멸치라는 식재료만 봐도 관리 잘된 것과, 관리 안 된 것의 품질 차이가 있다.

분명 비싼 멸치는 신선한 멸치이고, 싼 멸치는 어떻게 관리되었는지 조차 불분명한 오래된 멸치로 싸게 팔렸을 게다.

 



  멸치이야기에서

잠깐 내 이야기로 넘어가려 한다.     

나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모양은 그럴듯한 사람 같고, 그렇게 보이고, 그런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은 무늬만 그럴듯한 모양을 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어린이집 원장이라는 직함으로 겉모양만 광내며 살지는 않았는지


링컨은 이런 말을 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의 성격을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쥐어 주면 알 수 있다.>

영유아와 함께하는 업은 정말 신성한 일이다.

 ‘일’ 이라기보다 ‘사명’이다.


이 신성한 사명을 그럭저럭 모양만으로 가장한 그럴듯한 비주얼로 포장하여 매일매일 그저 버틸 것 인가?     

신선하지 않은 비린내 나는 국물 멸치의 모습처럼 권력에만 도취해서 말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면이 단단한 모습으로 리셋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투명한 운영 방침이 될 수도, 혁신적인 자기 계발이 될 수도, 트렌드를 읽어내는 공부가 될 수도 있다.




[어리바리한 멸치도 복구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어리바리한 사람도 복구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아무래도 신선하지 않은 멸치는 국물 멸치로 못쓰고

달달 볶아 비린내 날린 후 고추장도 넣고, 마늘도 빻아 넣고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어 멸치 볶음으로나 해야겠다.

먹을 만한 반찬으로 재 탄생시키려니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이렇게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비리다고 안 먹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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