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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비 Jan 04. 2023

나는 나를 소외한다

어제의 단상 #16

#16 나는 나를 소외한다


1

수업을 위해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오랜만에 다시 .

구청 병사계 직원인 '나(김)'와 부잣집 대학원생인 '안'과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판 가난한 서적 외판원 '사내'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눈길이 머문 곳이 몇 군데 있다.


하나, '나(김)'와 '안'과 '사내'는 마지막까지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오늘 밤'을 함께 보내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없다. 내일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 서로의 이름 따위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름을 묻는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장면이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물을 때 비로소 '인간'으로 마주하는 게 아닐까.


, '안'은 '사내'의 자살을 예감하면서도 모른 척한다. 작품에서 '안'은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라고 변명을 하고 있지만, 기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피곤하기 때문이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나와는 상관없는 쓸데없는 일에 오지랖을 부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지랖 넓다'는 말이 '주제넘은 간섭'이 아닌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넉넉한 행위'를 뜻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는 더 좋았던 셈이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현대인의 심리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본다. 거리에서, 거리의 군중 속에서, 군중의 소음 속 편안함을 느끼는 우리는 어쩌면 깊은 병이 든 건지도 모르겠다.


, '사내'의 죽음을 외면한 '나(김)'와 '안'의 나이는 겨우 스물다섯 살. '안'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한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익명성에 숨어 스스로를 소외하는 나이로 설정된 스물다섯. 그것은 희망을 걸기 위함일까, 절망을 확인하기 위함일까. 2023년의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2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다.


"기성세대의 잔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요즘 강의실에는 인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저 성적을 주고받는 기계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소리 높여 무언가를 설명을 하고 있지만 참 공허한 느낌이 듭니다. 벽을 느낍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소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달라질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3

대학원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조금 망설 받지 않았. 잠시  팀에서 겨울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연락을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머뭇거리다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저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눌 자신이 없었 때문이었다.


알고 있다. 나는 스스로 세상과 벽을 쌓고, 스스로 고독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나를 소외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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