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거리와 상상력
짐을 정리하다 오래전에 쓰다만 일기장을 찾았다. 몇 장을 읽어보니 십오 년 전 그날그날의 단상이 기록되어 있다. 서른 살의 꿈과 방황과 절망과 기대와 각오가 여백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붉은색 밑줄이 아직도 선명한 한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다.
"세상의 균열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고,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쓴다. 지금도 나는 거리 두기가 어렵고, 나의 상상력은 여전히 빈방에 갇혀 있다. 부끄러움만 쌓여간다. 얼굴이 더 두꺼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