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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비 May 18. 2023

두려움에 떠는 강아지는 없다

대화의 즐거움_#38

#38_두려움에 떠는 강아지는 없다


"아빠, '몽실이' 무서워하는 거 같아요."

(몽실이는 아이의 외할아버지 댁에서 키우는 풍산개이다.)

"그냥 좀 놀란 것 같은데, 아닌가 무서워하는 건가."


"하긴 어떻게 구분하겠어? 사람 표정도 구분하기 어려운데."


(...)


"아들, '몽실이'는 감정의... 뭐라고 해야 할까... 질서? 체계?가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을까?"

"어떻게요?"


"어쩌면 강아지 여러 가지 감정이 한데 뭉쳐 있을지도 모르잖아."

"감정이 뭉쳐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처럼 감정이 작고 복잡하게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라 크고 단순하게 뭉쳐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아-,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놀라는 거랑 무서운 게 같이 뭉쳐 있어서 구분하기 어렵다는 거죠?"


"응, 맞아."

"그러면 반대로 감정이 더 잘게 쪼개져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왜요?"


"기분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은 아무래도 강아지보다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사람의 감정이 더 잘게 쪼개져 있지 않을까?"

"-, 그렇겠네요."


"때로는 새로운 말이 새로운 감정을 만들기도 하니까."


(...)


"율아, 아빠가 어디에서 읽었는데 사람의 표정에서 구분할 수 있는 감정은 기쁨, 슬픔, 두려움, 놀람, 분노, 혐오 여섯 가지밖에 없."

"여섯 개요? 그러면 나머지는요?"


"표정으로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겠지. 절망 우울과 슬픔을 표정으로 구분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래서 아빠는 이 여섯 가지 감정에서 다른 감정들이 갈라져 나왔다고 생각해. 어쩌면 여섯 가지 감정도 어떤 감정에서 갈라져 나온 것일 수도 있을 테고."


"'몽실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지만 강아지도 표정이나 행동으로 기분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그건 사람의 감정이겠지. 두려움에 떠는 강아지는 없지 않을까."

"그러면요?"


"두려움은 사람의 감정일 뿐 강아지의 감정세계는 우리와 다르지 않을까. 다음에 율이가 동물의 감정에 대해 공부 많이 해서 알려줘."

"네, 아빠. 재미있을 것 같아요."


(...)


"아빠, 이 표정은 어때요?"

(아이는 눈으로 웃으며 입으로는 엉엉 우는 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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