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지난 몇 년 간 열심히 살지 않았어. 그때는 힘들고 지쳐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후회가 돼. 아빠는 '막다른 골목이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서 '더 나아지고 싶다', '더 성장하고 싶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지 못했어. 욕심이 희망인데, 바보같이. 그저 어려운 상황을 핑계 삼아 멈춰 서고, 물러서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의 감옥'에 갇혀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매일 늦게까지 일하셨잖아요?"
"그냥 습관처럼 한 거야."
"그래도 한 거잖아요."
"아니야. 그래도 한 가지, 그동안 율이랑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
"저는 아빠랑 함께 있을 수 있으면 다 좋아요."
"지금 아빠에게는 지난 몇 년 간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결과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중이야.모든 게 아빠가 선택한 일이고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아는데 기분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네."
"끝난 일이잖아요. 아빠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고마워. 그럴게."
"그러니까 힘내세요."
"아빠, <피너츠>(찰스 먼로 슐츠, 1950-2000)를 보면 '5센트 고민상담소'를 하는 '루시'가 우울해하는 '찰리 브라운'에게 '집에 가서 빵에 잼을 발라 반으로 접어 먹어'라고 말하거든요."
"그래서?"
"아빠도 맛있는 거 드세요."
"루시 말이 맞네. 뭐든 시작하려면 먹어야지. 율아, 내일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네. 좋아요."
"그래. 힘 내게 고기 먹으러 가자."
"아빠, 아빠가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가르치는 일 그만할지도 모른다고."
"응 그랬지.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
"저는 아빠가 다른 일 하셔도 좋을 거 같아요."
"어떤 일?"
"지난번에 먹었던 떡볶이요."
"갑자기? 너 많이 먹으려고?"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몰라.^^"
"그럼 내일 떡볶이 먹으러 갈까?"
"네. 좋아요."
"결국 답은 떡볶이인가."
저는 아이에게 후회도 자책도 걱정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아이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실패하더라도 그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왜 한 번만 더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왜 다른 길로 가려했을까.
밥벌이를 핑계로 시간을 축내고 있는, 지금의 무기력한 모습이 미워 몸서리치곤 합니다.먹고사는 문제는 물론 중요합니다. 쌀 한 톨에 깃든 삶의 숭고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후회의 시간만큼 망상의 시간도 길어지고 있습니다. 타임루프에갇혀 과거와 현재를 무한히 왕복합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어지고 있습니다.어쩌다 깜빡 잠이 들 때면 저는 사막을 달립니다.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막을 달립니다. 어릴 적 꾸었던 꿈을 다시 꾸고 있습니다.
'후회'와 '자책'과 '걱정'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 우리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제를 후회하고 오늘을 자책하며 내일을 걱정합니다. 어느 날 기억이 사라지거나 후회를 날려버릴 만큼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무한의 굴레 밖으로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굴레가 더 길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힘들어하는 저에게 항상 '밥 먹어라' 말씀하셨습니다. '괜찮아요. 이따 먹을게요' 하고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밥을 먹고 힘을 냈습니다. 힘을 내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야 하니까요. 수십 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결국 답은 밥입니다. '밥 먹자' 한마디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는 밤입니다.
덧붙임.
여름 방학이 끝나갑니다. 이제 내일이면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지친 마음에 따뜻한 위안을 주는 아이와의 밤 대화도 이제 곧 방학입니다. 시원하지 않고 내내 섭섭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