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만큼 행복해진다
“교수법 연수를 받으러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2년 전, 강사가 던진 질문이다.
“ 강의평가 결과가 너무 형편없이 나왔어요. 충격받고 왔습니다!”
어느 수학 전공 교수님의 대답이다. 강의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다들 놀란 것 같았다. 생각보다 솔직하게 말한 용기에 사람들이 더 놀란 것 같다.
“강의평가가 어땠는데요?”
“ ‘자기 혼자서만 수업하신다, 지루하다.’라고 썼더라고요.”
점수도 최하위로 받았단다. 학생에게 최후통첩(?)을 받은 것 같아 괴로웠다 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쳤는데 학생이 몰라준 게 서운하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자가 가르치는 일에서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계속 자신이 하던 대로 할 수만은 없어서 교수법 연수를 받으러 왔다고 한다.
나는 이 교수님의 입장을 이해한다. 35년 전 대학 시절, 나는 대부분 혼자서 수업하시는 교수님께 수학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석학, 기하학, 대수학… 내용은 진도 나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방대하다. 증명만 배워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일부 내용은 과제로 넘기면서 진도를 쭉쭉 빼야 한다. 앞으로 공부할 것이 산처럼 쌓여있어서 지체할 수도 없다. 신기하게도 잘 따라가는 학생도 있다. 물론 낙오되는 학생도 있지만 말이다. 위 교수님도 최선을 다해 수업했을 뿐이다.
학생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교수자가 자기 혼자서 수업을 한다고 생각할 때 학생은 집중도가 떨어진다. 내용이 뭔지 파악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수학은 특히 앞부분 이해가 잘 안 되면 뒤로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아마 혼자 예습, 복습도 하면서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과목만 수강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다음 시간에 들어가면 진도는 또 저만치 앞서나가 있다. 누적된 학습 결손이 계속되니 강의에 불만이 생긴다. 시험도 망쳤을 것이다. 학생이 강의평가를 어떻게 했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사실 나는 강의평가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 원인으로 가르치는 사람만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평가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감정적으로 영향받지 않을 교수자가 있을까?
이 시점에서 누구의 잘못인가? 이런 질문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 탓만 할 수도 없다. 교수자 입장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
내가 예전에 배웠던 방식을 잊어야 한다.
학생들이 학습하는 방법과 태도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 앞에 앉아있는 학생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학생과는 차이가 있다. 내 경험으로는 이 사실을 빨리 인식할수록 교수자에게 도움이 된다.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내 수업을 듣기 위해 바로 내 앞에 앉아있는 학생이 주인공이다. 그들을 위한 효과적인 교수법을 배우고 자꾸 실행해 보는 게 좋다.
쉽게,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금씩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며 학생에게 적절한 교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일단 뭐든 한 번 시도해 보면서 감을 잡아본다. 안 되면 다시 또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본다. 여러 번 시도로 학생에게 적절한 수업 방식을 그때그때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사도 노하우가 쌓여간다. 매년 학생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적용해도 무난할 자신만의 수업 방식이 윤곽을 드러낸다. 물론 완전한 방식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개선해가며 조정해 나갈 뿐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자. 완벽성을 버리면 긴장이 좀 누그러지고 즐기게 된다.
내 경우엔 수업 시간에 학생이 해야 할 적절한 몫의 활동을 추가한 것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발표, 조별 활동, 동료에게 가르쳐주기, 돌아가며 역할 분담하기, 문제 해결 과정 설명하기 등. 공감, 소통, 개방성, 나눔 등의 시도도 필요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무조건 교수자가 내용을 많이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이 학습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는 것과, 적절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학습할 동기와 의욕이 있으면 학생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다. 이때 교사는 세세한 내용을 혼자서 다 가르치는 것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다. 안내하고 이끄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변화는 어떻게 생길까? 학생이 답이다. 내 수업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대상은 학생이다. 변화의 시작은 학생이 주는 강의평가일 수도 있고, 학생이 보인 태도일 수도 있다. 때로는 학생과 나 사이에 남겨진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일 수도 있다. 예전 내가 배웠던 방식을 잊어버리는 게 필요하다. 무조건 그때와 다르게 가르치자는 뜻은 아니다. 상황은 계속 변하므로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교수법을
꾸준히 개발해 나가자는 의미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불러온 비대면 교육 실행으로 디지털을 이용한 교수 전략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지 않았나? 학생을 위해서, 내가 직업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부족함을 느끼고 필요에 의해 배우겠다는 동기. 그것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학생을 보면 답이 나온다.
학생도 그렇지만, 교사도 현장 교육에서 재미를 느껴야 기쁘고 행복하다. 우리는 재밌게 교직 생활을 하고 싶다. 변화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까이 있는 동료는 어떻게 하는지 묻고, 동료 수업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또 교수법 관련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교육 논문 사례연구에서 시도한 이런저런 방법을 엿보고 따라 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교수님처럼 방학 기간을 이용해 연수를 받는 것도 방법이다. 교수법 연수라고 그 내용이 항상 내 수업에 알맞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참여하는 동안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 수업에는 이런 방법을 써 봐야지.’ 하는 결심도 하게 한다. 적어도 한 가지의 교수 기술을 배워오는 것, 그것만으로도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보고 경험한 대로 행한다고 한다. 교사는 배운 대로 가르친다는 말도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고 교육환경이 변하고 있고 무엇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변하고 있다. 미국의 교육학자 하그리브스는 21세기 교사에게 필요한 전문성 요소 중 하나로
‘자신이 배우지 않았던 방식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을 제시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글이 갑자기 생각난다.
‘가장 빨리 망하는 지름길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내 수업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학생. 우리 내면의 교사인 학생을 바라보며 변화를 시도하자.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방식을 잊어야 한다. 변화하는 현장에 맞는 교수 방법을 배워가자. 현장 교육에서 학생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교수법 실행 속에서 교사도 수업을 재밌고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교사도 가르치는 과정에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비교하기:
내가 배웠던 방식, 요즘 학생들의 학습 방식.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저서 "교사라서 행복하세요?" 67-73에서
(책을 쓴 계기를 작가가 직접 설명하는 영상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