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사랑과 행복으로 가는 방법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녀석과 최근에 통화한 적이 있다. 녀석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부터지만 근 10여년간은 친구의 바쁜 스케줄 덕분에 통화도 거의 일 년에 한 번 정도씩 하곤 했었다. 그날이 바로 일 년 중 하루 그 녀석과 통화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날이 었던 것이다. 근데 평소에도 불만 가득했었던 녀석이지만 그날따라 더 의기소침해 보이는 목소리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너 어디 아프냐?"
하기야 평소엔 늦은 저녁에 통화해도 조용했던 회사와는 다르게 주변에 북적북적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 나 지금 병원이다" 이유인즉슨 그렇다. 회사의 살인적인 업무량 덕분에 연차는 고사하고 정시 퇴근도 한 달에 겨우 두세 번 남짓하다 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오늘은 갑자기 생긴 원인 모를 두드러기 때문에 겨우겨우 눈치 봐가며 연차를 써서 나왔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일 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며 달려왔던 녀석이다. 대학교 때는 학점 취득에 바빴고, 졸업 후에는 서울에 이름있는 대학원에 입학했으며 석박사 과정을 거쳐 취업까지 군대 외에는 정말 숨쉴틈 없이 노력해 왔다. 나라는 나태한 친구 녀석은 중간중간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으로 녀석을 꼬드겼지만 5년 전 설날 연휴 때 하루 술 한잔 했던 것이 가장 최근 만남이었다. 그것도 1차만.
어차피 안 들을 걸 알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늘 같은 잔소리를 건넸다. "넌, 너무 책임감이 강해서 문제야. 좀 쉬어라. 연차 하루 쓰는 게 너한테는 과감한 일이겠지만 쓰고 어디 가까운 곳 여행이라도 다녀와. 잠깐 쉬고 나면 그래도 많이 좋아질거야" 그런데 늘 마지못해 수긍하던 녀석에게서 그날은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난 네가 부럽다. 힘들 때면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잖아"
갑작스러운 대답에 순간 당황했지만 금세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아하, 그런 생각을 하고 지냈었구만...' 바쁘다며 그 흔한 소개팅마저 거절했던 녀석이 흔히들 말하는 결혼 적령기가 다가오자 외로워진 것이었다. 스무살 초반에 나도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적이 있었었다.
그때 당시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대상은 여자 친구건 친구건 가족이건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복에 대한 기대의 끝은 대부분 크든 작든 배신감을 동반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너무 많이 기대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기대하는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사랑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어린 시절에는 그 말이 이해가 안 갔지만 지금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때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대상이 있고 없어서 내가 행복하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 그런 불안정한 상태라면 사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와 사랑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누군가와 만나야지만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너무 큰 기대 때문에 좌절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혼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만나도 그만큼 베풀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비로소 프롬의 말처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 누구를 만나도 행복할 수 있다. 음, 뭔가 깨달은 듯한 느낌이야" 친구는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그야, 뭐 사실 나는 그런 생각이 하루아침에 바뀔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스스로에게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이 결국 누군가를 행복한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믿는다. 정말 외로울 수도 있겠지만 더더욱 그렇다면 요번 주말은 어디론가 훌쩍 혼자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