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 Feb 08. 2023

나의 이유는 나의 이유일 뿐인 걸요

무엇을 좋아한다는 게 다른 걸 싫어한다는 건 아니잖아요

너: 요즘 계속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잖아. 원래 친구에 대해 이렇게 생각이 많았어?


나: 노노 전혀 아냐. 단순하게 떠오른 어떤 단어, 문장, 상황 그런 걸 글로 풀어내다 보니 말이 길어지고 생각이 물리기도 하고 쓰고 나면 계속 머리에 남아 자가발전하고 그런 거지 평소엔 별로 생각 안 해.


너: 그래, 글이라는 게 그렇지.


나: 관계의 격한 상황이란 뭘까? 나는 격한 상황에 놓여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거 같아.


너: 엇 나도. 남들은 그런 상상을 하는 거야? 격한 상황이 뭐야, 치고받고 싸워?


나: 안 맞는데 헤어지는 걸 피하려고 억지로 만나다 결혼하는 연인의 관계는 격한 건가, 그냥 인정하고 헤어지는 게 격한 건가.


너: 진짜 관계의 격한 상황이라는 건 뭐야.


나: 친구가 0명이다, 친구가 100명이다 이건 격한 걸까? 결이 좀 많이 다르다 그렇지.


너: 일반적인 ’친구 그룹‘의 격한 상황이라면 다 비슷한 멤버만 있다 vs. 완전 다 다른 멤버만 있다 이런 건가?


나: 모르겠다 그렇지? 학교에서는 앞뒤옆에 앉아서, 혹은 어쩌다 밥을 같이 먹다가 친구가 되잖아. 그러다가 잘 맞으면 더 가고 아니면 나가떨어지고 그랬어. 그리고 그렇게 만나서 정말 잘 지냈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람을 고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네. 나한테는 물리적인 조건이 매우 중요했나 봄.


너: 너는 그 시절에 간택됐다매.


나: 그러게. 콕 집어서 나라는 사람이 맘에 들었던 건진 모르겠지만 그 당시 몇몇 친구들이 나름의 이유로 나를 선택했고 나는 그걸 따랐어! 그러고 보면 그때도 누군가는 친구를 선택했네.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분명해야 선택이라는 걸 하는데, 그 친구들은 그때부터 그랬나 보다.


그러고 보면 학창 시절 이후로 만들어진 다른 관계들도 그때랑 크게 다르지 않아.


너: 같은 부서라서, 프로젝트를 하다가, 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같은 학부모라서 그렇게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등등.


나: 조직에 가까운 사람이 있는 건 여러모로 안정감을 주지.


너: 꼭 그 사람이라서, 그 사람이 탐나서 친해진 적이 있던가. 내 주변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된 관계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나 그랬었구나.


나: 오, 좋다야! 나는 어른들이 자꾸 친하게 지내라고 하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면 칭찬을 받으니까 사람 고르는 걸 내심 금기시 했나 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는 게 그 외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자체 검열도 했어.


너: 진짜 누구 말대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보내기에도 모자란 인생인데 거 참.


나: 나의 덕질에, 하루는 남편이 ‘왜 그 그룹을 좋아하냐’는 거야, 남편은 첨 들어보는 그룹이니까. ‘어쩌다 노래를 들었는데 좋았고 그래서 그 이후로 응원한다’라고 답했거든. 그니까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건 다른 가수를 싫어하기 때문인 건 아니고 단순히 좋아해서 좋아하는 거.


너: 좋아하는 이유에 싫어함이 따라오는 건 아닌데 우리는 관계에서 취향이라는 걸 크게 적용시키지 않는다, 그렇지. 덕질은 일방인데 친구와의 관계는 쌍방이라 조심스러운가?


나: 저 사람 맘에 든다, 또 만나고 싶다, 연락하고 싶다 이런 경험 왜 없어 나. 하지만 오랫동안 개인으로 만나는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분명 비슷한 부분이 있어. 그게 아마도 내 취향인가 싶은데 말로 설명은 못하겠네. 내 취향.. 나니? 모.


너: 그럴 수도 있지. 만약 너의 ‘개인으로 만나는 친구들’을 모아서 그룹으로 만난다고 해보자. 그러면 어떨 거 같아?


나: 어머나, 상상이 잘 안돼ㅎㅎㅎㅎ 그 친구들이 각각 만난다면 잘 지낼 수도? 그룹은 여전히 나에겐 어렵다.


너: 네 고민은 관계 자체보다 여럿이 모였을 때 대화하는 방식이지? 언제부터인지 그 경계를 오락가락하더라.


나: 맞아, 나는 여럿이 만났을 때 좀 더 대화를 잘하고 싶은 거야.


너: 네가 푸는 썰을 보면, 넌 그룹 모임을 계속 갖는다는 전제를 하고 있어. 그것도 맞지?


나: 맞아.


너: 그럼 다시 그 방향에서 얘기를 해봐. 아니면 아예 다른 얘기를 풀던지. 경계가 모호한 지점이 생기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 오가지 마라!


나: 헐, 응. 방향 잡아줘서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더 이상 시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