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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렬 Nov 30. 2024

2. 그 여자, 두 번째 이야기: 동서 사이

그 여자, 그 남자

이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창조된 가상의 인물들입니다. 에피소드는 화학 키워드를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 다소 유치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 동서에게 못한 말이 있어.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하면 우리 사이가 너무 이상해질 것 같아서 못했어. 동서는 참 손이 빠르지. 과일도 참 빨리 깎고 음식도 빠르게 잘해. 시어머니는 동서가 살림을 잘한다고 칭찬을 하시지. 난 한 번도 칭찬을 받은 적이 없어. 직장 나가는 것이 벼슬이냐고 아들 밥이나 제대로 차려 주냐고나 하시지. 며느리가 식모로만 보이나? 결혼이 이런 건가? 싶었던 때가 많아. 


솔직히 난 많이 억울해.  저번에 시댁에 가서 같이 설거지할 때 이야기야. 동서가 설거지를 참 빨리하길래 신기해서 자세히 보니까 접시 밑은 대충 닦더라? 접시는 포개 놓을 거 아냐? 그러면 당연히 접시받침 부분이 음식물이 닿는 다른 접시의 윗면에 닿을 거잖아. 거기가 더럽고 세균이 있으면 나중에 세균 먹는 거 아닐까? 난 접시 밑도 깨끗이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거기까지 구석구석 닦아내다 보면 굼뜬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시어머니께 그런 소리를 해 봤자 '그래 너 잘났다' 같은 소리나 듣고 동서 흉이나 보는 속이 좁은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


그런데 이젠 적어도 설거지가 느려서 굼뜨다는 소리는 안 들을 것 같아. 워싱 소다를 이용해서 설거지하는 것을 배웠거든. 평소보다 시간은 1/3밖에 안 걸리지만 더 깨끗하게 설거지를 할 수 있어. 1/3이라고 그런다고 또 욕을 하려나? 뭐 어쨌든 다음에 시댁에 가면 어쩌면 동서는 내 흉을 볼지도 몰라. 설거지를 대충 하고 세제도 거의 안 쓰고 물로만 한다고 오해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어쩌지? 이제 나한테는 화학적 지식이 있거든? 이제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그래 나 잘났어. 공부도 많이 했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아. 살림살이도 이제 꽤 잘하기 시작했어. 그러니 이유 없이 죄인 취급하는 것은 이젠 참지 않을 거야.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욕을 먹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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