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리 및 청소에 강박이 있는 정리충이다. 정리가 되지 않은 공간에서는 집중을 하거나 마음의 안정을 찾기 어렵다.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이러한 정리벽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정리벽이 있는 엄마와 청소 강박증이 있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생긴 오랜 습관이다.
우리 집에서는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것이 규칙이었다. 신문이나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있으면 보이는 대로 정리해야 했고, 식사 후에는 사용한 식기를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식탁의자를 밀어 넣어야 했다. 엄마의 잔소리는 80퍼센트 이상이 집안에서의 규칙에 관한 것이었고, 엄마는 정리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 잔소리를 계속할 거라고 하셨다.
대학 입학 후에 자취하는 친구들의 집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고, 유학 중에는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날것 상태의 친구방을 보게 되는 일이 많았다.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어 초록색으로 변한 변기와 세면대, 침대 위의 옷무덤, 그리고 주방의 기름때와 씻지 않은 식기더미등은 갑작스러운 방문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광경이었다. 한국에서는 엄마가 항상 정리와 청소를 해주셨기 때문에 청소와 정리하는 법을 모른다는 그들에게 항상 청소와 정리가 되어있는 내 집은 오히려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엄마는 방정리는 해주지 않으셨다. 나는 학교에 늦는 한이 있어도 매일 아침 침대와 책상 정리는 해놓고 나갔다. 우리는 각자의 방 외에도 공용공간에서 담당하는 구역이 있었고,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용돈에서 일정 금액이 차감되었다. 냉장고에 붙어있는 엄마의 차트에는 차감당한 내역이 상세히 적혀 있었고, 이는 다음 달 용돈에 반영되었다. 당시에는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무슨 일이든 일단 습관이 되면 덜 힘들어진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었다.
가끔 티브이나 유튜브에서 우울증으로 인한 무력감으로 살림에서 손을 놓은 주부들의 이야기나 집이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들의 아픈 마음상태는 어지럽혀진 집안 상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나도 꽤나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고 몸이 아파 일상생활이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습관적으로 내 공간을 정리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공간에서 나는 도저히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청소와 정리는 마음이 복잡할 때 행하는 내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내 공간이 깨끗해지고 정돈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정돈되는 것을 느끼고, 세탁이나 설거지를 하면서 마음도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요인이거나 노동인 집안일이 나에겐 기분전환이 되곤 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누워서 빈둥거리며 티브이나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게으른 집순이였다. 이런 생활을 영위하면서 깨끗한 집을 유지하는 방법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청소효과를 얻는 것이다. 이사를 하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집안 정리를 하고, 그 상태를 90프로 이상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계절이 바뀌어 옷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거나, 새로 들어온 물건들에 의해 배치가 달라져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부분적으로 다시 정리하기도 하지만, 집안이 크게 어지럽혀지는 일은 거의 없다. 이사 초기에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여 물건의 자리가 일단 정해지면, 이후에는 간단한 정리만으로도 정돈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청소와 정리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 일은 생기지 않고 청소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거의 없다.
청소와 정리는 습관이다. 정리되고 깨끗한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은 물건의 자리를 정해두고 그것을 최대한 유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청소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하면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불필요한 물건들을 주기적으로 비워내는 노력도 동반되어야 한다. 답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짐더미를 정리하는 것이 아닌 적당한 양의 물건들을 가볍게 정리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히려 힐링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