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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방 Dec 15. 2022

물건을 비우면서 마음도 비워냈다

비우기의 시작은 신변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됐을 때, 가족들이 내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받게 될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싶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급히 한국에 들어와 미처 짐을 정리하기도 전에 병세가 악화되었고, 퇴원 후 돌아온 본가의 내 방에는 가져온 짐과 두고 간 짐이 뒤섞여 편히 쉴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유학 가기 전, 거의 한 트럭 분량의 옷과 가방, 신발 등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고, 나머지 짐과 가구들은 부모님 댁 작은 방 한 칸에 몰아넣어두었다. 오랜 외국생활로 늘어난 짐과 부모님 댁에 보관 중이던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지만, 반복된 수술로 간단한 일상생활도 버거운 상태에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도 없이 참 많은 물건들을 사들였다. 예쁜 물건들에 유난히 욕심이 많아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엄청나게 사모았고, 한국에 돌아올 때 그것들을 다 이고 지고 들어왔다. 작지 않은 사이즈 (6-7평)에 큰 붙박이장이 있는 방에 짐을 풀었지만, 엄청난 양의 물건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침대를 수납 침대로 바꾸고 이런저런 수납장을 들여놓으면서 방은 가구로 차 버렸고, 방에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장애물 피하기 게임이 되어 버렸다.


일단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가구 위치를 옮기고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극심한 통증에 몸을 수그리거나 짐을 옮길 수 없는 상태에서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저렇게 옮기고 정리해 달라고 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정리를 했지만, 내 방에는 여전히 물건이 너무나도 많았다.


본가에서 지내던 방 (전체샷) - 작은 욕실 사이즈의 붙박이장은 20상자 이상의 옷과 가방, 침구로 가득차 있다.


본가에서 지내던 방 (입구샷) - 검정.철제 책장 뒤에는 5단 선빈장, 5단 서랍장과 붙박이장 등이 숨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 최소 70프로는 내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가방, 신발, 옷, 생활소품, 액세서리 중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부터 처분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혹은 너무 새것 같은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 누군가가 대신 잘 사용해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중고거래를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지난 3년 간 중고 사이트에서 400개가 넘는 물건을 판매했고, 100개 이상의 물건을 나눔 했다. 물건을 하나씩 비워내면서 내 공간뿐 아니라 마음도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비워낼수록 소비도 신중해졌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여러 번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하나를 비워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했는지를 떠올렸다.


중고판매 및 나눔용 수납상자들 - 지금 집에선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현관 앞에 높이 쌓아두었다.



물건 비우기를 시작하고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면서 비우기는 조금씩 체계화되었다. 큰 사이즈의 수납상자를 많이 구입해서 판매하거나 나눔 할 물건들을 따로 모아두었다. 처음에 50개가 넘던 수납상자는 세 번의 이사를 거치며 11개로 줄어들었다. 여전히 비우기는 진행 중이고, 상자 개수가 줄어들면 더 내놓을 것이 없는지 집안을 살피게 된다. 비워낼수록 물건에 대한 욕심이 줄어들었고, 지난주에는 보낼 생각이 전혀 없던 것들이 이번 주에는 판매용 상자에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천천히 내 공간과 삶을 비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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