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항우울제와 위장 보호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며, 2주에 한 번씩 의사를 만났다. 약의 부작용 및 효과를 모니터링하기 위해서인데, 내가 둘 다 크게 느끼지 못하는 듯하자 의사는 약의 용량을 계속 늘려갔다.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의학과)에 가게 된 계기는 호흡곤란 때문이었다. 밤에 자다가 심한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잦았고, 이러한 진료기록을 본 가정의학과 교수님이 호흡곤란의 원인이 공황장애일 수 있다며 정신의학과 검진을 권하셨다.
난생처음 방문한 정신의학과에서 나는 긴 설문지를 작성하고, 레지던트 선생님의 예진을 받았다. 한참을 기다려 만난 교수님은 짧은 대화 후, 조금 심한 우울증이라면서 자살 충동이나 섭식 및 수면장애 여부 등에 관해 질문하셨다.
처음 건강이 나빠진 후 수술과 입원을 반복할 당시에는, 사실 나쁜 생각이 종종 들었었다. 통증이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고, 병은 끝도 없이 재발해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때 담당 교수님이 정신의학과 진료를 권하셨다. 너무 잦은 재발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증세가 심할 테니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지만, 이미 병원 스케줄이 너무 많아 정신의학과까지 추가할 여력이 없었다. 재활의학과에서 통증재활을 주 2회씩 꼬박 1년을 받았고, 그 외에 3개 진료과에서 2-3주에 한 번씩 진료와 검사를 받고 있었다.
공황장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채취를 통한) 갑상선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공황장애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당분간 약물치료를 꾸준히 해 보기로 하고 항우울제를 열심히 복용했지만, 크게 나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사실 약을 복용하기 전에도 크게 우울하지는 않았고 불안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의사는 수면 장애나 섭식 장애가 없는지 물어봤지만, 민망하게도 잠은 9시간씩 자고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야무지게 잘 챙겨 먹고 있었다. 원래부터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내가 우울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 몸상태를 살피는 것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정신 건강을 돌보는 노력은 게을리해 왔던 것 같다. 오랜 기간의 외국생활과 학업 등에서 온 스트레스가 신체적인 질환으로 발현된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아’라고 착각하며 아픈 마음을 다독여주지 못했다. 힘든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한 친구는 운동으로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다고 했고, 재작년부터 암투병을 하고 있는 한 친구도 요가와 명상을 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지쳐버린 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내 마음상태가 어떠한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의사의 질문에 자살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수면장애나 섭식장애도 없다고 답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가족들과의 갈등이 더욱 심해지면서 나는 거의 칩거하다시피 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혼자 분노하고 울면서 스스로가 너무 불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증상은 불안장애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올해 여름부터는 불안장애 치료제를 복용하게 되었다.
내 인생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완전한 패배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을 뿐, 언제부턴가 죽어도 전혀 아쉬울 것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은 잤지만 밤새도록 수십 가지의 정신 사나운 꿈에 시달렸고, 밥도 간식도 잘 챙겨 먹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먹고 싶은 것을 직접 만들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즐겨했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재미가 없게 느껴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즐겁지 않고, 연애세포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사소한 것에 행복감을 느끼고 세상에 재미있는 것과 맛있는 것이 많았던 나는 완전히 사라졌고, 매사에 부정적이고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러한 변화들이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들이라는 것을 정말 최근에야 깨달았다. 친구들에게 ‘우울증이지만 괜찮아’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던 나는 사실 전혀 괜찮지가 않았고, 스스로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나 자신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고, 나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심한 우울증 환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