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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방 Oct 21. 2023

1인 가구의 나 홀로 이사

나에게 이사는 고되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새로운 공간과 환경이 주는 설렘은 이사로 인한 육체적인 고단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해,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총 5번의 나 홀로 이사를 감행했다.


가족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기 민망한 나이인 데다,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셋집으로의 이사에 굳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고 싶지는 않았다. 네 번은 이사업체의 도움을 받았고, 한 번은 차로 조금씩 필요한 것들만 직접 옮겼는데, 이사업체를 이용했을 때도 포장이사를 이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까다로운 성격 탓에 모르는 사람들이 내 물건들을 만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도 하지만, 이사 중에 가구와 가전이 심각하게 손상되는 일을 매번 겪으면서 이사업체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을 구하고 나서 이사를 하기 전까지는 새 집을 꾸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가도, 막상 짐을 꾸리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짐의 양에 압도당하곤 한다. 정말 싸도 싸도 끝이 없는 짐의 행렬이다. 그냥 얼핏 보기엔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짐이었는데, 꺼내기 시작하면 짐이 무한 증식한다. 완전히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이삿짐 꾸리기가 마무리된다.


혼자 하는 이사는 정말 정신이 없다. 짐을 봐줄 사람이 없어 혼자서 이삿짐센터 사람들에게 일일이 작업내용을 전달하는 동시에, 계약관련한 일들 (이를테면 보증금 돌려받기와 새집 잔금 치르기 등)을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이 된다. 이렇게 정신없이 이사를 하다 보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이고, 이사가 마무리된 후에는 녹초가 되어 초저녁부터 쓰러져 잠이 든다.


이사 다음 날부터 시작하는 짐정리와 세부청소. 여러 차례 입주청소 서비스를 이용해 보았지만, 단 한 번도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인터넷 광고에서 자랑하는 그런 체계적이고 위생적인 청소 프로세스는커녕 너무 나도 아마추어스러운 초보들의 굼뜨면서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청소를 보며, 과연 다음에도 입주서비스를 이용하게 될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냥 내가 까다로운 탓이라 여기면서, 일차적인 기본 청소를 맡긴다는 생각으로 입주청소 서비스를 받는 것이 속편 하다. 입주청소가 끝난 새집의 수납장과 빌트인 가전 안에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두껍고 짧은 머리카락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곤 한다.



“이사 직후 최대한 완벽하게 정리하기 “


나는 이사 후 보통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들여 최대한 완벽하게 집을 정리한다. 이삿짐을 싸면서 일차적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삿짐을 풀다 보면 처분할 물건들이 또 눈에 띄기 마련이다. 불필요하거나 없어도 불편함이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을 다시 한번 골라낸다. 신기하게도 어제까지만 해도 꼭 있어야 할 것 같던 물건들이 다음 날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바로 처분하기보다는 판매 또는 처분용 물건들을 따로 모아두는 큰 종이수납상자에 일단 보관한다. 처분용 물건을 보관하는 이 상자들은 보통 한 두 달 후에 다시 정리하는데, 이때 최종적으로 이 물건들의 운명이 정해진다.


일단 짐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나면,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정리와 청소 중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정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혼자 사는 집이 크게 더러워질 일도 없기 때문에, 물건들로 어지럽혀지지 않도록 항상 제자리에 잘 정리하고 새 물건들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주는 것에 신경을 쓰곤 한다. 잘 정리되어 있으면 물건 찾기가 수월해지고, 같은 물건을 여러 번 사는 일이 확실히 줄어든다. 물건 정리의 기본은 재고파악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불필요한 소비와 지출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중복되는 물건과 불필요한 물건만 줄여도 짐이 확 줄어드는 것이 보인다. 나는 처음 짐을 줄일 때, 중복되는 아이템부터 줄여나갔다. 예를 들어, 선글라스가 11개 있지만, 한국에서는 선글라스를 많이 쓰지 않기에 가장 아끼는 선글라스 하나만 남기고 모두 당근마켓에 올렸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활방식과 취향이 많이 바뀌어, 예전에 자주 사용했던 물건이나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물건들을 들여다보고 안 쓰는 것들을 골라내곤 한다.



“항상 다음 주에 이사를 앞두고 있다는 마음으로 생활하기”


이사를 몇 주 앞둔 상태에서는 늘 초조하게 어떻게든

짐을 줄이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서 냉장고 속 오래된 식재료들을 소진하고, 쟁여둔 생필품들을 줄이려고 하게 된다. 쓰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을 급하게 처분하고, 짐이 될만한 것들은 가급적 집에 들이지 않는다. 특히,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들부터 처분해서 이삿짐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한 달만 생활하면 짐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사 전에 우체국 5호 상자를 기준으로 몇 개를 줄여야지하는 목표를 정하고, 공격적으로 중고거래와 나눔에 나선다. 여유 있게 물건을 처분할 때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이사하기 한참 전에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를 매번 하면서 결심한 것이 바로 ‘이사 직전 모드의 상시화‘이다. 다음 주에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꾸려야 할 짐상자의 개수를 예상해보곤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잔짐들 (즉, 상자에 들어갈 짐들)을 얼마나 줄여야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상자가 몇 개 이상은 절대 안 돼!‘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면 중고판매의 능률도 오르고 성취감도 커진다.




여전히 미니멀하지 못한 집에서 생활하는 미니멀리스트 지망생에 불과하지만, 이사를 반복하면서 내 짐이 어느 정도 되는지 구체적인 짐의 양을 파악하게 되었다. 한 집에서 정말 오래 사시는 내 부모님 댁에는 대체 어느 정도의 짐이 있는지 사실 갸늠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1인 가구인 내 짐은 3-4인 가족들의 짐에 비할 양이 아니라 이사가 훨씬 수월하기는 하지만, 짐이 많은 집들도 가끔 이사를 함으로써 불필요한 짐을 줄이고 내 살림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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