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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방 Apr 12. 2023

그림으로 가득 찬 공간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림이, 예술작품이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돈이 생기니 예술품을 소장하고 싶은 욕망의 발산일 수도 있고, 단순히 있어 보이고픈 허영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관찰예능이나 SNS에 자신의 집이 노출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유명인들에게 예술작품이 자신들을 있어 보이게 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패션소품처럼 유행하는 화가가 있다. 팬데믹 중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포스터가 한 인테리어 플랫폼에서 불티나게 팔렸고, 많은 룸투어 영상에서 그 포스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 화가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생을 살았는지는 몰라도, 어느 연예인집에 그 포스터가 걸려있는지, 어느 유명인이 좋아하는 화가인지는 안다. 갤러리나 전시기획사 입장에서는 따로 홍보를 할 필요 없이 유명인 한두 명의 SNS에 전시회가 노출되도록 하면 된다. 거기에 다녀왔으니 나는 문화적인 혹은 예술적인 소양과 취향이 상당한 사람이라는,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과시를 하기도 좋다. BTS 멤버가 다녀간 전시회의 화가는 단숨에 대중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물론 미술계에서 오랫동안 대가로 인정받고 있었어도, 미술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미술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는 이러한 열풍이 바람직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 열풍이 대중의 인식변화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단순한 유행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별다른 재능도 없는 사람들이 - 주로 연예인들 - 화가랍시고 전시회를 열고 비싼 값에 그림을 판다. 실력이 안되면 대작도 서슴지 않는다.


미술품을 패션 아이템처럼 혹은 인테리어 소품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구입하거나 소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구입한다고 해도 과연 그 그림을 걸어놓고 들여다보는 일이 몇 번이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인테리어 전문 플랫폼에는 그림을 대여해 주는 사이트도 성업 중이다. 주기적으로 그림을 바꿔 거는, 말 그래도 인테리어 소품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마음에 드는 그림은 구입할 수도 있다지만, 과연 그렇게 그림을 소장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말로는 그림을 좋아하고 전시회 다니는 것이 취미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림을 사지는 않는다. 꼭 비싼 그림, 유명화가의 작품을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을 끄는 그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면 충분하다.



어렸을 때, 엄마는 나를 유명작가의 전시회와 박물관, 갤러리, 고미술품 상가 등에 데리고 다니셨다. 우리 집에는 빈벽이 없을 정도로 벽마다 그림이 걸려있었고, 철마다 다른 그림으로 바꿔 걸렸다. 외가나 친가에서 물려받은 고가의 그림들도 간혹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무명작가의 처치곤란한 큰 작품들이었다. 100호나 200호의 초거대 그림들은 작가입장에서도 보관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보관이나 관리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액자나 표구값이 그림값보다 더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명품이나 보석을 살 때, 엄마는 돈이 되지 않는 그림을 사모으셨다. 그 부피 때문에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도 많았지만, 엄마는 꿋꿋하게 큰 그림들을 사들이셨다. 엄마는 이름 없는 작가들에게 재료값을 대주고 싶고, 그 큰 그림들을 치우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어린 내가 봐도 크게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그림들도 많았지만, 엄마는 계절과 거는 공간에 어울리게 열심히 그림을 바꿔 걸었고 그렇게 바뀐 그림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곤 했다. 내 친구들 중에는 그림 구경을 하러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40-50점의 거대한 그림들은 가족들에게 짐짝 취급을 받게 되었다. 몇몇 비싼 그림들을 제외한 나머지 그림들은 이사를 어렵게 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로 여겨질 뿐이었다. 값어치가 나가는 것과 아버지가 애정하시는 작품들을 제외한 나머지 그림들 중 몇몇은 내 선택에 따라 나와 함께 이사를 다니게 되었다. 비록 많이 가져가지는 못하지만, 일단 내가 그림을 한 점이라도 더 가지고 가겠다고 하면 가족들은 언제나 쌍수 들고 환영한다. 물론, 코딱지만 한 집에 살면서 그림을 많이 가지고 가려는 것이 딱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 눈치이긴 하다. 이삿짐차가 아닌 승용차로 따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내 작은 공간 곳곳에 엄마의 그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사를 하면, 가구보다 그림자리가 먼저 정해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다가 뒤척이면서 몸을 돌렸을 때, 밥을 먹다가, 그리고 작업 중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엄마의 그림들에 눈길이 가 닿을 수 있도록 그렇게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어렸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으로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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