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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방 Feb 09. 2023

나는 오래된 물건을 좋아한다


외동딸인 나는 물건을 물려받을 일이 없었다. 하다 못해 옷을 물려줄 또래의 친척언니도 없었다. 부모님은 항상 새 물건을 사주셨지만,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가족들이 쓰던 손때 묻은 물건을 좋아했다.


엄마가 젊은 시절 착용하던 스카프와 가방, 아버지의 수 십 년 된 울 스웨터와 머플러 등은 대학 다닐 무렵부터 내 옷장에 자리 잡았고,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사주신 몸집 작은 원목 가구들도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작은 화장대는 콘솔로, 작은 장식장은 책장으로, 바퀴 달린 의자는 침대 협탁으로 그 기능이 바뀌었을 뿐이다.



다른 형제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부모님의 오래된 물건들은 별다른 경쟁 없이 내 차지가 되었다. 다른 가족들이 짐으로만 여기는 엄마의 오래된 그림들 중 몇 점이 지금 내 공간을 장식하고 있고, 아버지가 대학원 다니실 때 읽던 수 십 년 된 원서들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물건 특유의 쿰쿰한 냄새를 좋아하고, 표면에 묻어있는 내 가족들의 흔적이 좋다.


평생 지속해 온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포기하고 미니멀한 삶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바로 추억이 가득한 이런 오래된 물건들이었다. 내가 산 물건들은 비교적 쉽게 처분했지만, 부모님의 물건들 혹은 부모님이 사주신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은 여전히 너무나 어려운 숙제이다.


미혼인 탓에 그리고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탓에 아직 가져오지 못하고 본가에서 잠자고 있는 엄마의 그릇들. 딸에게 물려줄 생각으로 엄마가 외국에서 사들고 오셨던 그 예쁜 그릇들을 뽀얀 먼지 속에 방치하고 있는 것이 마음 아프면서도, 내게 필요하지 않은 그 많은 그릇들을 가져와서 어디에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고 가벼운 삶을 지향하지만,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어쩌면 미니멀한 삶은 이루기 어려운 꿈일지 모른다. 30 상자 이상의 물건을 비워냈지만, 부모님의 물건들은 여전히 다 이고 지고 이사를 다닌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적어도 1/3은 그런 물건들이고, 본가에는 아직도 엄청난 양의 추억의 물건들이 내가 데려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울 물건의 기준으로 많이 언급되는 나를 설레게 하는 물건인지의 여부는 나에게 중요하지가 않다. 추억의 물건들이 나를 설레게 하지는 않지만, 이 물건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준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살아가기엔 아직 너무 젊은 나이지만, 부모님과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는 물건들은 내가 힘든 시간을 견뎌나가는데 어쩌면 큰 힘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몇 달 후 또 이사를 계획하며 짐을 줄여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 겨우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과 한동안 신지 않은 신발들, 그리고 좀처럼 쓰지 않는 색조화장품들이 처분대상 1순위에 올라 현관 앞 종이수납함에 들어가게 되겠지만, 이번에도 부모님의 물건들은 나와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에 안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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