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생적으로 맥시멀리스트였다. 예쁜 것을 좋아하고, 딱히 사야 할 것이 없을 때에도 습관적으로 쇼핑을 했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퇴근길에 항상 백화점에 들렀고, 친구를 만나면 꼭 쇼핑을 했다. 무언가 필요해서 사기보다는 그냥 가지고 싶은 것을 샀다. 그렇게 구입한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끌어안고 있었고, 그렇게 엄청난 양의 물건이 쌓여갔다.
유학 중에도 고질적인 쇼핑병은 고쳐지지 않았고, 그 대상은 인테리어 소품과 주방용품으로 확대되었다. 쇼핑으로 유명한 도시들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도심 번화가에 위치한 대학만 다녔기에, 등하굣길에도 내 손엔 늘 쇼핑백이 들려있었고 이사를 할 때마다 유학생의 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짐 때문에 우버대신 비싼 이사업체를 이용해야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니멀리즘에 눈을 뜬 것도 유학생활을 하면서였다. 매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는데, 짐을 싸고 풀고 옮기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 탓에 조용히 혼자 이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방학 때마다 한국에 오기 전 대여창고에 짐을 맡기는 것도 엄청난 수고를 요하는 일이었다. 보통 유학생들은 제일 작은 사이즈의 창고로 충분한데, 나는 가구까지 맡기는 현지인들이 대여하는 큰 사이즈의 대여창고를 빌려야 했다.
거의 울면서 이삿짐을 옮기던 어느 날, 나는 30-40kg의 짐을 들고 3-4개의 계단을 오르다 가방과 함께 굴러 떨어졌고, 난생처음으로 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를 마친 후, 현지 한인 커뮤니티와 학교 커뮤니티 등에 올릴 물건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유학생뿐 아니라 워홀러들도 엄청나게 많은 곳이라, 물건의 판매는 나름 순조로웠고 짐이 눈에 띄게 줄었다. 앞으로는 이사도, 스토리지 대여도, 귀국짐 싸는 것도 수월해지리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짐이 거의 반으로 줄었을 즈음, 갑작스럽게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병원을 다니고 요양을 하느라 더 이상 물건을 줄이지는 못했지만, 이후 수술을 받기 위해 급히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을 때 이전에 해둔 물건 다이어트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연이은 입원과 반복되는 수술로 귀국짐을 풀지도 못한 채 베란다에 방치하게 되었다. 세 번째 입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당분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할 거란 생각에 수납가구들을 주문했고 청소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내 방을 (그리고 풀지 못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본가에서 내가 쓰던 방의 사이즈가 6-7평 정도로 상당히 큰 사이즈였고, 12자 옷장에 버금가는 수납력을 가진 붙박이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테트리스를 하듯 물건을 꾸역꾸역 쑤셔 넣어야 할 정도로 물건의 양이 여전히 엄청났다.
사실 유학을 떠나기 전, 1톤 트럭 한 대 분량의 책, 옷, 가방, 신발 등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다. 나름 엄청나게 짐을 줄여놓고 갔다고 생각했지만, 유학생활 중 늘어난 짐과 본가의 내 짐을 합치니, 4인가족이 소유할 법한 엄청난 양의 짐이 되었다. 다시 원점이었다. 오랜 유학생활 중 생각 없이 사들인 물건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때, 내게 갑작스럽게 안 좋은 생겼을 때, 이걸 정리하게 될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첫 입원에서와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리고 다음번에는 지난번처럼 운이 좋지 못하다면? 적어도 내가 있었던 자리는 깔끔하게 정리해두고 싶었다.
이때부터 나의 미니멀리즘을 향한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내 두 손과 두 발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가방과 신발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주 사용하는 가벼운 가방들과 당장 신을 신발들을 남기고 전부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렸다. 깨끗이 닦아서 사진을 찍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하나씩 올리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특히, 구매자와 거래흥정을 하고 약속을 잡아 직거래 또는 택배거래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몹시 피곤한 일이었다.
사실 그냥 내다 버리는 것만큼 쉬운 방법은 없을 것이다. 유튜브에 나오는 거처럼, “900개의 물건을 버렸어요!” 같은 식으로 한다면 하루이틀 만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성 들여 고르고, 잘 관리하면서 사용해 온 소중한 물건들, 혹은 사놓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많은 물건들을 그냥 내버리기에 물건에 대한 내 애착은 너무 강했다. 큰돈이 되지 않아도 소중하게 간직했지만 더 이상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다른 사람이 잘 사용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 물건들을 만드는 데 사용된 많은 자원들을 생각하면, 그냥 버리는 것은 엄청난 자원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내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물건 하나를 판매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는지를 떠올렸다. 하나를 새로 들이기 전에 하나를 반드시 처분하기로 한 규칙도 나름 잘 지켜오고 있다. 본가의 내 방에서 시작된 물건 비우기는 이후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3곳의 집을 거치며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다시는 예전의 호더 (hoarder)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정말 이를 악물었다.
2023년 9월 30일 현재, 나는 나눔 하거나 버린 것들을 제외하고도 534개의 물건을 비워냈다. 예전처럼 순식간에 짐이 줄지는 않지만, 이전에 올려둔 물건들이 한 달에 4-5개씩 꾸준히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되고 있다. 나에게 미니멀리즘이란 단순히 짐을 줄이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처분하는 목적을 넘어서, 한때 나에게 소중했던 물건들을 나 대신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게 하는 ‘자원 공유‘ 내지는 ’ 자원 순환’의 개념이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내 집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지구를 쓰레기로 오염시키는 것이 아닌, 내 집에서 나온 물건들이 다른 곳에서 다른 목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미니멀리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