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많이 마셔도 현관문 비밀번호는 누르는 이유
카사노바의 생존심리학
by 카사노바의 생존 심리학 Mar 24. 2026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과 이를 저장하는 두뇌 부위인 기저핵을 떠올리게 한 개인적인 경험이 하나 있다. 나는 술이 매우 약하다. 직원들과 함께하는 회식 자리를 솔직히 말해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공직사회에는 회식 자리에서 술을 권하는 문화가 무척 강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과음을 하고 말았다. 2차로 노래방까지 갔던 것까지는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완전히 끊겨 버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출근 후 함께 자리했던 직원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내가 노래방에서 이미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취해 있었고 그 직원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직원이 현관문 앞에서 나를 깨우자 아무렇지도 않게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장면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다는 점이다. 독자 여러분 중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만취한 상태의 내가, 어떻게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정확하게 눌러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습관적인 몸동작을 저장하는 기저핵에 있다. 당시 나는 그 집에 약 2년 정도 거주하고 있었고, 그동안 현관 비밀번호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그 결과,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수천 번의 반복을 거치며 하나의 운동 패턴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반복적인 손가락 움직임은 의식적인 기억이 아니라 기저핵에 저장된 무의식적 행동 지도로 남게 된다. 그래서 의식은 술에 취해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저핵에 저장된 습관적 움직임은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