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원 과제로 제출할 70분짜리 단막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차, 주인공의 캐릭터 성격에 대해 제대로 설정해 놓지 못했다. 이야기에서 소재만큼이나 중요한 게 주인공인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칠 뻔했다. 숏츠 중독인 세상에서 1시간이나 되는 드라마를 12번 이상 보는 일이 쉬울 것 같은가. 그 어려운 일을 시청자가 하게 하려면 주인공이 얼마나 매력적 이어야 하겠는가.
그 매력적인 캐릭터는 전적으로 작가의 손에 달려있고 나는 그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야 하는 작가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아니... 그걸 알면 내가 이미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됐겠지. 난 모르겠는데? 그래. 어쩔 수 없다. 나는 갖지 못한 매력이지만 거짓부렁으로라도 한번 쥐어짜 보자. 어차피 드라마 자체가 허구인 것을.
주인공은 크게, 완벽한 주인공 혹은 빈틈이나 결핍이 많은 주인공으로 나뉘는데 완벽한 주인공의 경우 너무 완벽하기만 하면 오히려 인간미가 떨어지고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거리감을 느낀다. 시청자가 주인공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면 애정을 형성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완벽하기만 하면 응원할 맛이 나겠는가. 약간의 빈틈이 있어야 시청자도 주인공을 토닥여 주고,위로해 주고,응원해 줄 맛이 나는 거다.
빈틈과 재능의 역할
그래서 작가는 이들에게 남모를 약점이나 아픔, 비밀, 트라우마 같은 것들을 만들어 주어 완벽하게만 보였던 주인공에게 시청자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준다. 완벽한 겉모습 이면에는 저들도 나와 비슷한 약점과 아픔이 있는 인간이구나를 느끼며 시청자는 주인공에게 애정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빈틈과 결핍이 많은 주인공의 경우에는 특별히 뛰어난 한 가지 재능이나 남다른 장점이 있어야 한다. 주인공이 너무 허술하거나 너무 불쌍해서 답답하기만 하면 드라마 자체를 보기 싫어진다. 내 인생도 딱히 되는 일 없이 갑갑한데 드라마 주인공까지 우울한 얼굴로 계속 고구마만 먹고 있으면 나 같아도 바로 채널을 돌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밑바닥에서 온갖 고난을 겪더라도 회를 거듭할수록 이것들을 뚫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무기 하나 이상을 주인공에게 심어준다. 그것은 재능일 수도 있고 착한 심성이나 매력적인 외모 혹은 성격일 수도 있다.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이 무기를 가지고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로부터 기대하는 바는 명확하다. 카타르시스! 그것은 통쾌함이나 즐거움일 수도,감동과 깨달음일 수도 있다. 결국은 그런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소재와 그에 걸맞은 주인공을 만들면 된다는 것.
막상 닥쳐봐라 말처럼 쉽나
그래. 배울 때는 쉽지. 이거 막상 초보가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짠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이야기의 캐릭터와, 글을 쓰는 나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써야 하는데 잘못하다간 나중에 캐릭터에 작가의 성격이 반영될 수 있다. 다행히 작가가 매력적인 성격이라면 별 문제없겠지만 나의 자아가 캐릭터에 반영된다면... 어떤 장르로 시작했든 끝은 B급 코미디로 끝날 것이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지.
나는 학원에서 배운 대로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대입해 보았다.
만약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완벽한 캐릭터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빈틈과 결핍이 있는 주인공이라면 또 어떻게 될까. 이미 시놉은 정해져 있고 비슷한 플롯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더라도 주인공의 성격에 따라 아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이다.
나는 종이 인형에 옷을 잘라 입히듯 캐릭터를 이야기에 입혀 가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서 누가 할래?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