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화 Oct 29. 2024

서울 와서야 느끼는, 친구가 필요할 때

꿈을 꾸다 보니 어느새 서울에 와 있는 나. 어느새 서울 생활에 익숙해졌다. 숙소 근처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 생활하며 느끼는 불편함도 딱히 없었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음식이었다.

서울에 맛집이 없을 리도 없고 인간의 욕구 중 식욕이 제일 높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없을 리도 없다. 난 청산가리와 독버섯만 아니면 뭐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문제다. 서울에는 맛집이 너무 많아서 문제고 가고 싶은 맛집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가면 되지. 그래서 처음에는 혼밥 위주의 식당을 다녔다. 그런데 혼밥 맛집은 한계가 있었다. 나는 파스타도 먹고 싶고 스테이크도 먹고 싶고 관광지 카페에서 디저트도 먹고 싶은데 이 모든 것들 혼자 하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물론 굳이 혼자 려면  수 도 있겠지. 하지만 관광지에서 혼자 먹는 파스타? 혼자 먹는 디저트? 즐겁지가 않을 것 같았다. 진짜 먹으러만 온 것 같잖아. 물론 그건 맞지만. ㅜㅜ


쓸쓸함을 느끼려던 차에 친구들이 하나 둘 서울에 올라왔다. 반가웠다. 네가 반가운 게 아니라 맛집을 갈 수 있음이 반가웠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천지 쓸모없는 줄 알았는데 네가 쓸모 있는 날이 다 오는구나."


서울역에서 친구를 만나자마자 바로 동대문시장에 있는 맛집으로 향했다. 인도카레 집 에베레스트. 여긴 친구가 예전부터 서울 오면 자주 오던 맛집이라 추천해서 와 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일단 난이 다른 카레집 보다 훨씬 맛있었고 카레는 뭐 말할 것도 없다. 또 가고 싶은데... 맛집 때문에라도 여기에서 친구를 사귀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그래도 명목은 관광인지라 관광객인 척 요런 사진들도 좀 찍어주고 소화도 시킬 겸 여기저기 구경도 했다.




이건 여의도 미도인에서 먹은 스테이크 덮밥인데 가성비 좋고 맛까지 있어서 식사시간에는 웨이팅이 필수지만 우린 식사시간이 지나서 왔기 때문에 다행히 웨이팅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이런 덮밥집은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지만 여긴 맛집이라 웨이팅까지 있는 곳인데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ㅜㅜ


예전에는 레코드 점 가면 거의 CD만 팔았는데 요즘은 어째 LP파는 곳이 더 많아진 것 같다. LP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줄이야. 나는 LP세대가 아니라 LP의 매력을 잘 모르지만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LP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더 아날로그적인 소리가 나려나. 


성수동 맛집. 여기도 친구가 맛있다고 추천한 곳이다.  희한하지? 관광을 온 건 친구인데 아까부터 맛집 안내도 친구가 다 하고 있고 난 그저 캐리어처럼 따라다니기만 한다. 뭐 아무렴 어때.  아무 생각 없이 짐짝처럼 끌려다니니 편하고 좋네.


길치인 나에게 다시 찾아가라면 절대 못 찾을 곳에 위치한 식당. 적당히 어두운 실내와 아늑한 조명, 그리고 고급진 있음이 느껴지는 요리들이 좋았지만 양이 적은 게 아쉬웠다.

나는 대식가는 아니고 중식가 정도 되는데 포만감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독버섯과 청산가리 빼면 다 먹는 나에게도 한 가지 철칙이 있었으니 아무리 맛집이어도 양이 적으면 재방문은 하지 않는다. 맛없는 것보다 감질나는 게 더 싫은 사람. 그게 나야.


한달 뒤,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서울에 올라왔다. 나는 이 친구에게도 똑같이 말해주었다. "나는 네가 세상천지 쓸모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필요한 날이 오는구나."


친구와 대학로에 가서 연극 한 편을 봤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연극이라 심사숙고해서 코믹 장르의 연극을 선택했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확실히 연극은 코믹이 재미있는 것 같다. 배우들 애드립도 그렇고 관객과 소통도 더 많은 느낌이다. 덕분에 간만에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연극을 보고 대학로 근처 호프집으로 가서  김치우동에 튀김쥐포를 안주로 봉봉 소주를 마셨다. 지독한 알쓰인 내가 먹어도 거의 취기가 없는 음료에 가까운 소주였다. 전골 같은 김치우동이 만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맛도 맛이지만 요즘 물가에 만원으로 둘이 배를 채울 수 있음이 놀라웠다.


우리는 대학로에서 종묘를 지나 종로3가까지 밤길을 걸었다. 낮에도 이 길을 걸어봤지만 이 동네는 확실히 밤이 더 좋았다. 특히 종로3가는 달 뜨고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뭐. 나도 예전에는 이 시간에 어슬렁어슬렁 집구석을 나와 새벽까지 친구들과 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집에서 나오던 시간에 들어가는구나. 반짝이는 네온사인 앞에서 반짝였던 청춘을 떠올리며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이튿날,  친구와도 똑같이 성수를 갔고 똑같이 서울 숲을 갔다. 몇 번을 와도 예전 성수 없었다. 내가 살 때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성수동의 모습이 몹시 낯설었다. 여긴 그냥 다른 곳이잖아.


아. 내 인생도 이렇게 로또 맞은 것처럼 바뀌면 참 좋으련만. 그동안 수많은 복권과 로또를 샀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런 요행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장담하니 혹여나 기대도 하지 말아야지. 

아니야. 그래도 기대는 할 수 있잖아.


동남아 음식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성수동에서 동남아 음식점을 검색해 찾아간 곳이다. 우리는 거의 오픈 시간에 갔기 때문에 웨이팅 없이 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계산하고 나올 때는 웨이팅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팟타이와 쌀국수를 주문했는데 팟타이는, 중국집의 짜장면처럼 어딜 가나 기본은 다 하는 것 같고 쌀국수는 태국식이라 국물 색깔이 진하고 육수도 베트남식과 달랐다.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식 쌀국수 뽀얀 국물이 담백하니 내 입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우리가 성수동 길거리를 걸으며 구경한 것은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아니라 관광객들이었다.

역시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우리는 미리 예약한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뒤 디저트가게로 향했다.


그래 이거잖아. 내가 와보고 싶었던 디저트 가게. 드디어 친구가 있어 올 수 있는 이곳. 일반 카페는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지만 여긴 관광지라 혼자 오는 손님도 없고 웨이팅까지 있어 혼자 자리 차지하고 있기가 좀 눈치 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당당하게 주문을 하고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며 침 흘렸던 케이크도 주문해 본다.



친구가 주문한 아메리카노는 너무 맛이 없어서 놀랐고 내가 주문한 쑥라떼는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흑임자케이크는 꾸덕한 게 맛있었지만 친구 입에는 별로였는지 거의 먹지를 않더라. 오예. 개꿀. 다 내꺼.


성수 관광을 마지막으로 친구를 데려다주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친구가  기차가 떠나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