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막 과제 제출일이 다가오며 나의 이야기도 어느덧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초보이다 보니 트리트먼트만 가지고는 분량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과연 35페이지 안에 다 넣을 수 있을까? 나는 생각 끝에 시퀀스마다 페이지를 지정했다. 적어도 그 페이지 안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기로. 소설과 달리 극본은 정해진 시간이 있기 때문에 분량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분량이 정해져 있으니 이야기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줄이는 것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게다가 단막은 분량이 적은 편이기 때문에 딱 핵심적인 이야기만 해야 한다. 나는 일단 40페이지 정도를 쓰는 것을 목표로 구성을 짰다. 그리고 퇴고하면서 5페이지 정도 줄일 생각이었다. 그러면 딱 알맞게 핵심적인 이야기만 남겠지.
내 떡잎은요?
나는 극본을 쓰는 틈틈이 다른 단막극 극본을 읽으며 배울 점과 내 이야기의 개선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도 감정이 널뛰기를 했다. 완성도 높은 극본을 읽을 때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데, 하나는 ‘와~’ 하는 존경심이고 또 하나는 ‘젠장. 드럽게 잘 쓰네. 나는 어쩌라고.’ 하는 좌절감이다.
아니 좁아터진 나라에 왜 이렇게 능력자들이 많은 거야 대체.
이런 식이면 이 바닥에 내가 설 자리가 있겠니?
아니야. 좌절하지 마. 그들에게도 분명 초보인 시절이 있었을 거야. 나처럼 서툴렀던 시절이 있었을 거야. 다 고만고만하게 비슷했을 거야. 반드시 그랬을 거야.
하지만 나의 꽃밭 같은 망상은, 공모전에 당선되는 제자들은 학생 시절부터 떡잎이 남다르더라는 선생님의 말씀으로 인해 와장창 깨져버렸다.
선생님. 그럼 제 떡잎은요? 저에게 떡잎이라는 게 붙어 있긴 한가요?
그래 이번 기회에 내 떡잎을 한번 확인해 보자.
나는 눈앞의 과제에 집중했다.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과정을 거치면서 촘촘하게 내비게이션을 찍어 놨으니, 아마 이야기는 방향 이탈 없이 목적지까지 순조롭게 도착할 것이다. 즉 내 이야기가 중간에 엉뚱하게 산으로 가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야기가 산으로 갔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시청자는 무엇을 느낄 것이며 드라마를 통해 무엇을 얻어갈 것이냐이다. 재미? 감동? 깨달음? 요즘 같은 숏폼 대세시대에 나의 피 같은 1시간을 여기에 태웠는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뭐라도 얻어가는 게 있어야 인지상정. 그러니 드라마가 목적지까지 순조롭게 도착했어도 그 목적지에서 시청자가 느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망한 거다. ‘내가 한 시간 동안 대체 뭘 본거지?’ 시청자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면? 역시 망한 거다. 바다에 가려고 버스 탔는데 내려보니 산이더라. 당연히 이것도 망한 거다. 이런 식으로 하면 드라마가 망하는 이유 100가지도 댈 수 있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요리사다.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서 짜야하고 어느 부분에서 달아야 하는지, 중간중간 매운맛을 어디에 넣을지, 마지막에는 어떤 허브로 장식할지도 정해야 한다.
그래. 망하는 공식도 알겠고 흥하는 공식도 알겠고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도 이론적으로는 알겠는데 막상 내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도 모르겠다.
요리할 때 간을 수십 번 보다가 미각을 잃은 느낌이랄까. 내 글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제와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