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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 Dec 17. 2024

여기는 코리빙하우스입니다 4

내 이웃의 상태

내가 오피스텔을 알아보며 들었던 공통적인 이야기 중 하나가 방음시설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코리빙하우스 역시 구조가 오피스텔과 비슷했기에 방음이 좋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입주 며칠이 지나도록 옆집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벽을 만져보니 합판이 아니라 단단한 시멘트였다. 아. 여기는 방음이 좋구나. 나는 안심하고 친구와 편하게 통화도 하고 TV소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 5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앞집이다. 어떤 여자가 노래를 부른다. 새벽 1시에. 취했나 보다. 그리고 다음날, 또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새벽 2시에.


아... 이 여자, 주사가 노래인가.

고음불가는 그렇다 치고 박자가 너무 안 맞는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기 방음이 좋은 게 아니라 내 옆집 사람들이 그냥 조용한 거였다. 그날부터 나는 친구와 통화할 때 속삭이게 됐고 TV소리도 크게 줄였다.     


너목보에서 탐낼 인재

어느 날은 노랫소리가 새벽에 들렸다가 어느 날은 오후에 들리기도, 어느 날은 저녁에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새벽 1-2시. 그 비명소리는 남자친구와 전화로 싸우는 소리다.



새벽에 남들 깨든지 말든지 소리를 그렇게 질러대는 인성에도 남자친구가 붙어 있을 줄이야. 그렇게 쌍욕을 하고 싸웠으니 이제 헤어졌겠지. 이제 한동안 조용하려나... 는 개뿔.

다음날 집으로 찾아온 남자친구와 복도가 떠나가라 하하 호호하며 집을 나가더라.



 이 여자의 노랫소리에 시달리며 새벽에 잠을 몇 번이나 깼는지 모른다. 노래나 잘 부르던가. 너목보 음치로 나가면 딱 맞겠던데. 코인노래방 두고 왜 새벽마다 방구석에서 저러는지. 여전히 안 맞는 박자가 몹시 거슬린다.     


그 여자의 정체가 궁금해질 무렵. 여자가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내놓는 것을 보았다. 아... 드디어. 가는구나.




이제 새벽마다 너목보를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웃이 이사 가는 게 이렇게 기뻤던 적이 있었던가. 그 여자가 이사 가고 나에게 드디어 광복이 찾아오나 했는데... 며칠 뒤, 또다시 그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환청인가.

 




아니. 환청이 아니다. 노랫소리가 앞집옆옆집에서 정확하게 들린다. 그 여자다. 그 여자 목소리다. 그렇다. 그 여자는 앞집옆옆집으로 이사했다.     

 




최강 역마핑

뭐 하는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행보가 내 지능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마다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중간중간 비명소리도 다시금 들려왔다. 한 번씩 조용한 날이면 아마 그 여자가 본가에 가는 날일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조금 멀어졌다고 소리가 옅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옆집 사람들은 암흑기에 접어들었겠지.      


그렇게 여섯 달이 지났을 무렵, 앞집옆옆집 여자의 집을 청소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을 보았다. 아. 이사 갔구나. 그리고 더 이상 그녀의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그런 줄 알았다. 이사 간 줄 알았다. 이제 끝인 줄 알았다. 그랬는데. 화장실에서 환풍구를 통해 그녀의 노랫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환청 일리가 없다. 귀신이 불러도 그보단 잘 부를 것이다. 여전히 박자가 안 맞는 걸 보니 그 여자가 확실하다. 노랫소리는 위쪽에서 들려왔다. 그 앞집옆옆집 여자는 윗집집으로 이사 간 것이다. 살다 살다 이렇게 강한 역마살은 처음 본다. 6개월 동안 같은 건물에서 이사를 3번이나 하다니. 작가지망생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탐나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앞집이었다가 앞집옆옆집이었다가 윗집집 이웃이 된 그녀의 서사가 궁금해진다.


이건 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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