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본가에 내려가는데 거기에서 보통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울의 숙소로 돌아온다. 그렇게 서울 숙소로 돌아온 날, 피곤함에 잠든 나는 잠든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번쩍 눈을 떴다.
복도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는 화재경보기 때문이다. 잠결에 들은 화재경보기 소리에 벌떡 일어난 나는 비몽사몽 한 채로 생각했다.
‘불이 난 건가? 이렇게 죽는다고? 이건 꿈일 거야.’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키려는 듯 경보기는 계속 시끄럽게 울렸다.
나는 창문을 열어 위아래를 살폈는데 연기가 난다거나 탄내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약간 안도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창문을 닫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때가 새벽 2시 정도였는데 투숙객들이 비상계단으로 하나둘 내려오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니 이미 몇몇 사람이 내려와 있었고 내가 내려오고 난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중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이 새벽에 경보음을 듣고 얼마나 놀랐을까. 만약 내가 다른 나라 여행 가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어휴.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잠옷 차림으로 건물 밖에서 서성였지만 다들 뭘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건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피한 지 20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건물 어디에서도 연기가 난다거나 탄 냄새가 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분명한 오작동이었다. 하지만 경보기는 계속 울리고 있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도 찝찝한 상황.
건물 밖으로 나온 지 20분이 지났을 무렵 그제야 건물 보안업체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참 일찍도 오시는군요. 그나저나 20분이 지나도록 소방차 그림자도 안 보인다는 건, 이 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119에 신고를 안 했다는 말이다. 하긴 연기조차 보질 못했으니. 아무튼 뒤늦게 도착한 보안요원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야 경보기가 꺼졌고 사람들은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침대에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곧이어 복도에서 들리는 웅성거리는 소리.
'아. 진짜. 이놈의 집구석. 잠 좀 자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내방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소방서에서 나왔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소방대원이 소방 점검을 나왔다며 내 방의 화재 센서를 점검하고 나갔다.
새벽 3시.
하아. 이제는 잘 수 있는 것인가. 나는불안함과 찝찝한 마음을 안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또 어떤 일로 나를 잠 못 들 게 할지 벌써 기대가 된다.
이틀 뒤, 새벽 1시.
또다시 복도가 떠나가라 시끄럽게 울려대는 화재경보음에 깬 나는
욕을 욕을 하며 일어나 잠결에 주섬주섬 외투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확실히 처음보다는 대피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느려졌다. 소리가 울리니까 대피를 하긴 하는데 어느 누구도 서두르거나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역시나 오작동. 오작동이라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론 반복되는 오작동에 짜증이 났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설마.
새벽... 이젠 몇 신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잊을만하니 다시 울리는 경보음.
이 정도면 화재경보기에 악귀 씐 거 아니 나며.
예상대로 이번에도 역시 오작동이었고 결국 며칠 뒤 소방서에서 객실 점검을 통해 오작동 난 센세를 교체하면서 경보기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정말 불이 나서 경보음이 울린 거라면 어찌 되었을까? 세 번째 경보음이 울렸을 때는 이번에도 양치기소년의 거짓말 일거라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대피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작동이 아니라 진짜 화재가 난 거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머릿속에 영화 소재 하나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