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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쓰파인더 Jan 13. 2022

왜 실패했을까?

경찰 데이터 분석 부서를 만들려던 실패 원인 

내가 실패했지만, 일도 실패했다고 하기엔 이를지도 모른다. 나 개인이 총경 승진을 탈락했을 뿐 우리 부서가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조직의 진로'는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생겼다. 승진을 하고 총경급 부서로 키워가며, 센터장 교체의 리스크를 줄이고 싶었는데 그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그런 건의를 하고 승인을 받으려던 계획은 해볼 수 있지 않나?) 

경정의 계급 정년은 14년이다. 이제 4년 후 퇴직해야 한다. 4년 후 퇴직을 하면 센터장을 바뀐다. 혹은 2년 후 경찰대학 근무 연한(통상 5년)에 따라 교체될 수 있다. 아직 부서의 뿌리가 취약하니, 센터가 없어질 수도 있다. 리스크가 생긴 시점에서 그간 경로를 짚어보고 싶다. 무엇이 실패의 원인이었나?


1. 리더십의 부족

경찰이 리더쉽이 강한 조직일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곳에서 가지게 되었다. 경찰은 상명하복을 당연히 생각하기에 리더십도 강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었다. 경찰 조직이 상명하복 규정과 문화가 강하지만 개인의 리더십과 달랐다. 경찰은 법집행을 하는 국가기관이다. 경찰 조직은 경찰관 개개인과 크고 작은 조직들이 활동하는 목적과 권한, 절차를 법률과 규정으로 갖추고 있다. 전국 경찰 12만 명이 각 부서별로 동일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규칙에 정해지지 않은 사항들은 '다른 경찰서도 이렇게 한다더라'라는 참고 사례를 보면서 따른다. 그 겹겹이 쌓은 규정과 관행에서 상사의 명령은 권위를 갖는다. 

보스와 리더 (출처 : https://dohwan.tistory.com/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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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구소는 그렇지 않다. 연구 자체가 기존에 없는 것, 모르는 것, 불확실한 것을 탐구하는 조직이다. 상부에서 연구 부서의 목표, 절차, 방법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정해주지 않는다. 구성원이 스스로 목적과 방법을 정해야 한다. 우리 센터의 일은 경찰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은 수집-전처리-분석-시각화-배포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합의된 규정은 아직 없다. 이런 규정을 권위를 갖춘 상급 관서가 정해주면 갈등이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찰관서와 달리, 우리 센터의 업무는 그런 규정이 없어, 우리 스스로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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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센터는 일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 내가 탁월한 실력과 권위, 자기희생, 리더십의 기술, 인간성으로 구성원들의 역량을 모아갔으면 좋았을 터이지만, 그렇지 못했다. 내가 제시하는 목표는 '현장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되도록 빨리 만들어 부서운영의 동력을 키워가자'는 것이다. 센터 1~2년 차 동안 구성원들의 주된 의견은 '섣부른 실력으로 실제 현장에 개입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실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법은 '실제 데이터를 분석하고, 민간과 외부 연구기관과 협업하자'는 것이었다.  구성원들은 '데이터를 외부로 공유하는 협업 보다, 가상 데이터로 기술을 배양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내 의견대로 따라주긴 하였으나,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았다. 부서로서 움직여지는 것이 느리거나 피로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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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겪었어야 할 과정이었다고 자위하고 싶다. 그래도 내가 실력이 더 있었다면, 더 참을성 있게 대화했다면, 내 시간을 더 들이고, 더 따뜻했다면 좋았을 텐데, 더 리더십이 있었으면 시간을 좋았을 텐데 생각한다. 이 고민은 지금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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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찰에 데이터 분석이 과연 필요한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모든 영역에서 말한다. 경찰에도 마찬가지다. 스토킹, 가정폭력, 보이스피싱, 디지털 성범죄,,, 해결해야 할 과제의 대책으로 'AI 활용', '빅데이터 기반'이라는 말들이 들어가곤 한다. '뭔가 새롭고 신선한 대책'을 위해서는 실행이 필요하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데이터를 모아 처리하고 분석하고 해결책을 배포'해야 한다. 이 과정을 외부에 맡기려면 비용이 필요하다. 내부에 의뢰하면 정보를 공유하고 시행착오를 함께할 신뢰가 필요하다.  비용과 신뢰가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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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은 물론, 신뢰는 유한한 자원이다.  정치적 부담과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그런 비용을 들일만큼 경찰에게 데이터 분석이 필요할까?  아직 효용 대비 비용에 너그러울 만큼 데이터 분석을 갈구하는 건 아니지 싶다. 경찰은 의사결정이 빠른 상명하복 조직이다. 비밀을 지켜야 할 일이 많다. 문제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범인을 잡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안 된다. 이런 조직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계량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보다 직관적으로 보수적인 결정을 하려 한다.  비용과 신뢰 자원을 들여 데이터 분석을 할 만큼의 필요성을 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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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분석을 하는 분야는 크게 조직의 전략을 결정하기 위해 추세를 분석하는 것, 기관의 인력-예산을 배분하기 위해 결측점을 파악하는 것, 목표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다. 경험상 조직 전략이나 자원 배분 목적의 데이터 분석은 비교적 쉽지만, 반면 수요가 낮다. 간절히 궁금한 것은 아니다. 적당한 수준의 답을 주고받는다. 문제를 명쾌히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So what?'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면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정보는 구체적인 문제이다. 그만큼 답을 찾는 것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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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센터가 성공하지 못한 원인은 경찰에게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구체적인 궁금함을 해결할 만큼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는 '자원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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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원 부족

우리 센터의 기획연구 당시 인프라 설치 비용을 약 150억, 매년 운영비를 5억 원으로 상정했다. 인력은 총경 등 경찰관과 일반직 공학 연구관 등 12명을 구성했다.  데이터 자원은 여러 부서의 경찰 데이터와 공공-민간 데이터를 수급하기로 했다. 지난 4년간 그만큼의 자원을 투자했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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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프라 자원은 지난 4년간 어림잡아 20억 정도 투자했다. 1~2년 차 동안 초기 시설을 장만 하기 위해 과기정통부 R&D 사업에 참여해 초기 시설을 설치했다. 약 10억 원 정도를 투자해서 서버, 스토리지 등 기초 장비를 마련했다. 3~4년 차에는 경찰청 예산과 과기부 기금 사업으로 10억 원 정도의 시설을 만들었다. 방화벽, 망전환 장비, 클라우드 장비 등으로 구색을 갖췄다. 운영비를 조금씩 받아 소프트웨어를 빌리거나 전문가 자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목표한 120억 정도의 슈퍼컴퓨터 여건은 먼 미래다. 실은 그만큼의 인프라를 가동할 데이터와 인적 자원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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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가장 문제다. 분석을 하려면 재료가 있어야 한다. 데이터 분석은 원 재료(raw-data)로 해야 한다. 112 신고 데이터는 원자료를 매일 받고 있다. 우리에게 구명줄이었다. 112 신고 원데이터가 있었기에 가느다란 명맥을 이으며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경찰 통계 자료는 엄밀한 의미의 로데이터는 아니지만, 그것을 다양하게 재집계할 수 있어 재료로서 가치가 있다. 공개할 수 없지만 사건의 발생 일시 장소가 표시되어 있는 범죄 응용통계는 가치 있다. 치안고객만족도 나 체감안전도 데이터도 로데이터는 아니나, 집계 자료나마 간헐적으로 받고 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수사 데이터이다. 법적 쟁점과 신뢰 부족으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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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문제는 결국 인적자원이다. 4년간 함께 한 동료는 단 1명이다. 임기제 공무원과 경찰관 정원을 가진 부서다. 임기제 공무원은 모두 임기를 마치고 각자 새 출발 했다. 경찰관은 2년 주기로 떠나고 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바라던 곳이 아니어서, 떠난다.  '조직의 기술력'이란 결국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난망하다. 실력이란 경험과 지식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매년 리셋하는 조직에서는 언덕 위로 밀어 올린 바위가 다시 굴러 떨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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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인정받아야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한다. 조직은 데이터 분석에 미지근하니 자원 확보가 어렵다. 부족한 자원으로 성과를 만들려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마흡했다.  어려운 여건에서 머물다간 동료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추운 겨울, 계속 이어지는 실패를 견딘다.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을 향한 고마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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