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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쓰파인더 Jan 14. 2022

내게 없었던 것 : 지식과 기술

데이터 분석 개발부서장으로서 실패에 대한 반성

"우리 부서는 목표가 없어요.", "내가 무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그때그때 눈앞의 일을 쳐내기만 하는 조직이 연구조직이라 할 수 있나요?"

지난 4년간 자주 들었다. 유일한 경찰 데이터 분석 조직으로서 길을 직접 찾아가는 팔자로서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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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한다. '체계적인 목표와 전략을 세우면 혼선이 없을 것 아니야?' "누구나 동의할 거시적 목표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한 체계적 전략을 수립해서 그 전략대로 세부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꼭 그렇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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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에서 정책을 결정할 때 사용하는 모델 중에 '합리 모형', '절충 모형', '쓰레기통 모형'이 있다.

'합리 모형'은 목표가 분명하고 목표를 이루는 수단의 적합성을 판단하여 선택할 수 있을 때 사용한다.

'절충 모형'은 상대적으로 불분명하고 수단의 적합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목표를 수정하기도 하는 등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모델이다. 

'쓰레기통 모델'도 있다. 목표, 수단, 참여자, 선택의 기회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그때그때 변화한다. 

쓰레기통 모형 (출처 https://url.kr/ul4c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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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센터는? "여러분,,, 합리적 목표를 세우기가 어려워요... 우리가 세우는 장기 목표를 조직이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단과 달성 일정을 조직이 이해하기도 어려울 거예요...", "그때그때 눈앞의 과제를 해결해가면서 긴 목표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정도로 합시다..."라고 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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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급하게 의사 결정하는 조직이고, 인사 주기가 짧다 보니 장기적인 성과보다는 단기 실적을 원한다. 상사들은 데이터 분석 개발 조직에게 필요한 인프라와 기술 축적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장비, 소프트웨어, 데이터, 기술 전반이 인프라이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대 수준을 맞추는 장비는 수십억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이해하는 상사를 찾기 어렵다. '미국 경찰이 운영하는 모 시스템을 사면 될 것 아니냐'는 분도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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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 지나고 그야말로 좌충우돌 몇 개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체계적 목표를 추진한 게 아니었다. 자원 획득할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제안했다. 사업을 따내면 그 사업과 우리의 목표를 끼워 맞췄다. 하지만 센터의 본질은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 데이터를 직접 개발하여 의미 있는 기술로 국민과 현장 경찰을 돕는 부서이다. 시스템은 그 일을 하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 아슬아슬하게 선후를 바꾸지 않고 유지하는 것은, 기술력을 가진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서 나도 기술과 지식으로서 일해야 하는데,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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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능력은? 1) 개발 능력 

실제 데이터에 파이썬, R을 통한 분석 코드를 개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경찰 데이터는 원 데이터를 그대로 민간에 제공하기 어렵다. 최근 인공지능은 실제 데이터에 공개된 소스를 적용해서 성능을 높여가는 과정이다. 다. 이 역량이 없으면 경찰 데이터 분석 부서라고 할 수 없다. 이 역량을 갖춘 동료들은 소수이다. 나는,,, 그 역량 없다. 센터 내 학습 모임도 참여했지만 낙오했다. 개발이라는 건 언어와 비슷하더라. 알파벳을 할 줄 안다고 술술 독해되는 것도 아니고 자유자재 작문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A, B, C 만 어버버 하는 상사가, 자유자재로 작문하는 동료들에게 분석과 개발 지시를 하는 게 효율적인가 자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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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술 전략과 기획 역량

내가 하는 일을 IT 계열로 말하면 '기술 전략', 기획' 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술 전략은 유한한 자원으로 어떤 것을 개발할지 선택하는 일이다. 우리 부서에서는 내가 이 의사결정을 한다.  데이터 분야에서 기획은 어떤 데이터를 어떤 기술로 분석하고 시각화해서 무엇을 알아낼지 궁리하는 작업이다.  이 의사결정도 내가 할 때가 많다. 해결할 문제를 선택하고 어떤 데이터를 입수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영역에서 공부가 부족하니 이제 점점 둔탁하게 부서를 이끌어가는 게 아닐까? 뻔한 결론과 뻔한 논거로 말하지 않나?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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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분야(?) 지식 (Domain Knowledge)

도메인 지식은 데이터가 탐구할 고유 영역에 대한 지식이다. 경찰 데이터니까, 범죄학, 심리학, 행정학, 통계학들이 해당한다. 행정학을 했지만, 양적 연구를 자유자재로 하고 이론을 모델로 끌어와서 가설을 설정하기엔 박약하다. 빅데이터가 문제의 답을 자동으로 찾는 시대라고 하지만 이론이 탄탄하면 분석 모델을 구성할 때 수고로움을 줄여준다. 내가 제시하는 도메인 지식은 우리 부서의 가장 나이많은 경찰관, 여러 부서를 거친 실무 경험의 통밥 정도이다. 이름을 붙여주자면 짬밥 지식?, 그간 짬밥 덕을 톡톡히 보고 있지만, 그게 전부 인 게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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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차 부서로서 기본 뼈대는 만들어졌다. 뻔한 얘기로 시간을 뺏을 바엔 공부를 해야 한다. 어찌해야 시간을 잘 써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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