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네번째이야기
두맹이 골목을 걷다보면 오래된 버스벽화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버스의 문이 열리고,
차장언니가 "오라이!"를 외치던 그 시절.
골목을 가로질러 달리며 겨우 승차권을 내밀던 어린 나.
그 시절의 흑백사진처럼 희미하지만, 마음속엔 선명한 기억들.
요즘 아이들은 교통카드를 찍지만, 우리는 종이 승차권을 손에 쥐고 다녔다.
버스에서 자리를 잡고 앉으면 창문으로 바람이 훅 들어오고, 차장언니의 손짓에 따라 승객들이 줄줄이 오르내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시절 동네 중심에는 늘 상회가 있었다.
슈퍼마켓이란 말 대신, 상회라는 이름이 더 정겨웠던 때. 우리 동네엔 '창성상회'가 있었다.
거기엔 없는 게 없었다. 과자도 팔고, 연필도 팔고, 어묵 국물도 있었다. 겨울이면 찐빵기계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유혹처럼 흘러나왔다.
야채만두는 아빠가, 팥찐빵은 엄마가 좋아했다.
나는 김이 올라오는 그 유리뚜껑을 보며 한참을 서 있던 아이였다. 창성상회 앞에 서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시절.
그 시절 상회집 아이들은 대장 노릇을 했다.
“우리 집에 다 있다~” 하며 으스대던 말,
정말 부럽기 그지없었다.
아침이면 들리는 또 다른 소리.
우유병이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신문이 문앞에 툭 떨어지는 소리.
우유를 먹는 집은 왠지 부잣집 같았다.
병뚜껑을 열고 거품이 둥둥 뜬 우유를 한 입 머금고 나면, 그날 하루는 왠지 특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 골목은 늘 분주했다.
버스가 다니는 길도 아니고, 번화가도 아니었지만,
거긴 우리의 세상이었고, 매일이 작은 축제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조용해졌지만,
벽화를 보며 깔깔 웃는 아이들을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골목은 여전히 살아있다.”
두맹이골목을 걷다가 ‘두맹이이발관’ 벽화 앞에 멈춰 섰다. 그림 속 꼬마 아이의 표정이 마치 오래전 우리 집 풍경을 닮아 있어 웃음이 나왔다.
우리 집은 딸이 많은 집이었다. 그래서 이발관을 갈 일은 별로 없었다. 엄마는 신문지를 꺼내 가운데 구멍을 뚫어 목에 둘러주곤 했다. 그렇게 한 명씩 차례대로 줄을 서서 머리를 잘랐다.
“가만히 있어야지, 머리 이상해진다~”
엄마의 말에 숨을 죽이고 앉아 있으면 어느새 머리는 삐뚤빼뚤. 그래도 그 시간이 어찌나 즐거웠는지, 거울을 보며 서로의 머리를 보고 킥킥 웃었던 기억이 난다. 바닥엔 잘린 머리카락이 수북했고, 공기 중엔 비눗물 냄새가 퍼졌다.
지금은 어디서도 그런 광경을 보기 힘들지만, 이발관 벽화는 그 웃음소리와 따스했던 오후의 햇살을 다시 불러오는 듯하다.
벽화 속에는 그런 추억이 살아 숨 쉰다. 그림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 건, 그 시절의 나, 그 시절의 우리가 함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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