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두번째이야기
햇살 좋은 날,
두맹이골목의 또 다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제주 바다가 담장 위로 슬며시 스며드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고요한 골목에 펼쳐진 파도와 물고기, 해녀의 그림들은
그 길을 걷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그림 속 해녀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제주 여성의 삶 그 자체다.
바람 많고 척박한 땅에서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던 해녀의 삶은
오늘도 이렇게 담장 위에 단단히 박혀 있다.
물질하는 해녀의 호흡,
파도를 헤치며 그물 안으로 들어오는 고기떼,
그리고 고요한 푸른 바닷속,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골목을 감싼다.
좁은 골목바닥에까지 파란 물결을 그려넣은 길을 걷다 보면
문득, 내가 바닷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바닥이 물결이고, 벽이 수면이라면
이 골목 전체가 하나의 바다 같다.
이 골목은 실제 바다와 맞닿은 곳은 아니지만,
벽화 속 바다는 우리 모두의 기억을 데려온다.
어릴 적 여름이면, 집집마다 누군가는 보말을 삶았다.
냄비에 담긴 보말이 끓고 나면,
골목 입구에 놓인 평상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앉는다.
손에 이쑤시개를 들고 쏙쏙 빼먹던 그 맛,
쫄깃한 식감과 짭짤한 바다 내음,
바로 그 기억이
이 벽화 앞에서 다시 살아난다.
또 문득 떠오르는 장소,
산지천.
바다 마을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 우리 동네엔
엄마들이 이불을 빨고,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던
장소가 있었다.
고무대야에 이불을 담고 비누를 문지르던 엄마들,
옆에서 물장구를 치며 웃던 우리.
엄마 발 밑에서 부풀던 비눗방울처럼,
그날의 기억들이 둥실 떠오른다.
두맹이골목의 벽화는 그림이 아니다.
기억의 환기이자, 감정의 통로다.
지나가는 누구에게도 ,바다는 다르게 다가올 테고
누군가에겐 해녀의 삶,
누군가에겐 여름 저녁 보말,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산지천의 물비누 향일 것이다.
담장에 그려진 제주바다 앞에서
어린시절 바다를 따라 추억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