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의 빛과 그림자

by 봄날의꽃잎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면 마음이 먼저 들뜬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나는 큰 목소리로 외친다.

“야, 다들 잘 지냈어?”

벌떡 일어나 맞이하는 친구의 포옹에, 순간 예전 20대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주고받는 반가움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자리에 앉으면 곧장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 큰애가 이제 고3이야. 학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큰일이야.”

“어머, 너희는 아직 애들 대학도 안 갔지? 우리 집은 등록금에 자취방에… 그냥 돈이 나가더라.”

다른 친구가 덧붙인다.

“우린 벌써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약 먹으라고 하더라니까. 진짜 나이 든 게 실감 나.”


순간, 예전 모임들이 스쳐간다.

20대에는 남자친구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이번에 소개팅했는데, 진짜 괜찮더라!” 하며 연애담으로 밤을 새웠다.

30대에는 아이 키우는 고충으로 서로의 눈시울을 붉혔다.

“밤마다 애가 울어서 미치겠어.” “우리 집도 똑같아.”

40대에는 아이의 진학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이번에 영어 학원을 옮겼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웃음 반, 고민 반이었다.


하지만 50대가 된 지금, 대화의 결은 조금 달라졌다.

아이들은 제법 자라 제 길을 가고, 이제는 건강과 노후, 부모 부양 같은 주제들이 모임의 테이블 위에 놓인다. 웃음소리로 시작하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요즘 남편이 은퇴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대. 나도 같이 막막해.”

“우리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 드나드는 게 일이야.”

“야, 우리도 이제 효도받을 나이인데 아직도 부모님 챙기고 있다니까.”

농담처럼 흘려도 그 속에는 씁쓸함이 묻어난다.


나는 맞장구를 치며 함께 웃지만, 눈길은 친구들의 표정을 따라간다. 누군가는 일부러 더 크게 웃고, 누군가는 말을 아끼며 물잔만 만지작거린다. 모임에서 오가는 말들은 늘 활기차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 감추고 있는 피로와 무게가 숨어 있다.


나는 대화 속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편은 아니다. 의견이 달라도 굳이 우기지 않고, 불협화음을 만드는 것을 피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진실처럼 퍼질 때면 마음이 불편해져, 그 순간만은 내 목소리가 커지곤 한다. 늘 조용히 듣다가도 꼭 필요한 순간에는 말을 보탠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피로에 젖어 있다. 환하게 웃던 표정은 사라지고, 눈가에는 무겁게 내려앉은 그림자만 남아 있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마치 무대가 끝난 배우처럼 힘이 빠져 의자에 털썩 앉는다.


누군가에겐 모임이 또 다른 시작이지만, 나에게는 끝나고 돌아와 맞이하는 고요가 더 소중하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불을 은은하게 켜고, 따뜻한 물에 손을 씻는다. 그 순간, 모임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물거품처럼 흘러내려 간다. 주방에 앉아 따뜻한 차를 우려내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으면 하루의 무게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아마 많은 내향인들이 이 순간을 알 것이다.

사람들 속에서 활짝 웃는 것도 좋지만,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임의 흥겨움이 즐겁더라도, 고요 속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에너지를 채우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내향인에게 주어진 충전의 방식이자,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의 원천이다.

덕분에 나는 다음 모임에서도 또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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