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옷장 정리와 닮았다

by 봄날의꽃잎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열고,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들을 하나씩 꺼낸다.

“언젠가 입겠지” 하고 넣어둔 옷은 결국 몇 해가 지나도 손이 가지 않는다. 괜히 붙잡고 있으면 자리만 차지할 뿐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비워낸다. 옷장 속이 가벼워지고, 꼭 필요한 옷만 남으면 오히려 더 잘 보이고, 입을 때마다 편안하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억지로 이어가려는 관계는 옷장 속 맞지 않는 옷처럼 답답하다. 잠깐은 걸쳐볼 수 있지만 오래 입고 다닐 수는 없다. 반대로, 오래 입어도 편안한 옷처럼, 오랜 세월 곁에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관계를 정리한다는 건 사람을 끊어내는 게 아니라, 내 삶의 자리를 비워내고 진짜 필요한 사람을 더 선명히 바라보는 과정이다.

오늘 오래된 친구들과 주말을 함께 보냈다. 내편이여서 좋은건 오로지 좋은거 그대로, 속상한건 속상한거 그대로 이야기해도 되는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이 오래된 스웨터처럼 나를 따뜻하게 해준다.


50이 되고 보니 관계가 주는 의미가 달라졌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싶지 않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 애쓰던 시절은 지났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한 번 모임에 다녀오면 며칠은 회복이 필요하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자리도 이제는 즐겁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 그래서 자연스레 선택하게 된다. 건강한 관계, 편안한 사람,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자리.


내향적인 나는 넓은 관계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친구 일이라면 뭐든 도우려 나서던 사람이었다.

늦은 밤 전화를 받으면 달려가고, 부탁이 있으면 내 사정을 미루고라도 들어주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일에 다 힘을 쏟기엔 내 마음도, 내 몸도 지쳐간다. 대신 정말 소중한 사람, 오래 입어도 편한 옷 같은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마음을 기울인다. 깊고 단단하게 이어지는 관계가 나를 지탱한다.


옷장을 정리하듯 관계를 정리한다는 건 차갑게 끊는 게 아니다.

그저 맞지 않는 옷을 비워내듯, 나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관계를 내려놓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남은 관계는 더욱 선명하고 단단하다. 꼭 필요한 옷만 남았을 때의 개운함처럼, 불필요한 짐을 덜어낸 관계는 내 마음을 가볍게 한다.


50대의 인간관계는 그래서 가볍다.

하지만 그 가벼움은 아무하고나 두루 어울리는 얄팍함이 아니다. 불필요한 짐을 덜어낸 뒤에야 찾아오는 자유로움, 꼭 필요한 옷만 남겼을 때의 단정하고 개운한 가벼움이다.


혹시 당신은 어떤가요?

사람들 틈에서 무조건 다 잘해주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옷장 속 꼭 맞는 옷처럼 편안한 사람만 곁에 두고 싶은 마음.

그렇다면 당신 역시 ‘외향적인 내향인’으로서,

관계의 진짜 무게와 가벼움을 동시에 배우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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