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자리에서 말없이 배우다

by 봄날의꽃잎


모임에 나가면 나는 늘 말이 많은 쪽은 아니다.

사람들 속에서 웃고는 있지만, 정작 내 귀는 더 바쁘다.

여럿이 동시에 말을 쏟아내는 순간에도, 나는 굳이 끼어들지 않는다. 대신 누가 어떤 주제에서 목소리를 높이는지, 누가 웃으며 말하지만 눈가에 피로가 스치는지를 유심히 본다. 말은 표면적인데, 표정과 몸짓은 더 많은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 요즘 회사에서 너무 힘들어.”

한 친구가 툭 던지듯 말하면, 다른 친구가 바로 받는다.

“너 원래 그런 거 잘 넘기잖아.”

순간, 나는 그 친구 얼굴에 스친 씁쓸한 표정을 본다. 말은 가볍게 흘렀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괜히 위로의 말을 던지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마주치면, 상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고 안도하는 듯하다.


어린이집 교사회의 자리에서도 나는 늘 먼저 듣는 편이다.

“그 아이는 산만해요.”

“너무 급해서 집중을 못 해요.”

그런 말이 오가면 나는 서둘러 맞장구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의 하루를 떠올리며 그 말 속에 숨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순간이 오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의사가 아니에요. 아이들을 진단하지 맙시다. 우리는 교육자잖아요.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방법을 연구하는 거예요.”


회의실이 잠시 고요해진다. 웃음 섞인 대화가 끊기고, 공기가 달라진다. 모두가 내 말을 곱씹듯 잠시 멈춰 선다. 나는 덧붙인다.

“산만하다는 건 호기심이 많다는 뜻이에요.

급하다는 건 도전심이 크다는 거고요. 우리는 그 긍정적인 면을 먼저 봐야 해요.”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교사들도 더 귀를 기울인다. 늘 경청하던 사람이 입을 열면 그 말은 묵직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향적인 내가 사람들 속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른다.


나는 불협화음을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의견이 달라도 굳이 우기지 않는다. 서로 마음만 상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조용히 넘어가는 건 아니다. 누군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사실처럼 말할 때는 그냥 넘기지 못한다.

“그건 조금 다른 것 같아. 내가 알기로는…”

필요할 땐 분명히 짚는다. 평소 조용하던 내가 단호하게 말하면, 주변은 잠시 멈추고 내 말을 새겨 듣는다.


말이 많은 자리일수록, 나는 더 조용히 귀 기울인다.

회의에서는 장황한 설명 속에서 본심을 읽어내고, 농담이 오가는 자리에서는 웃음 뒤에 감춰진 외로움을 포착한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말 한마디 던지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내향인의 침묵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다.

그 침묵은 관찰이고, 이해이며, 때로는 준비다.

나는 늘 조용하지만, 필요할 때는 힘 있게 목소리를 낼 줄 안다. 그 균형이 나를 지탱하고, 관계를 이어가게 만든다.


혹시 당신도 그런가요?

사람들 틈에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듣고 관찰하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만 힘 있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

그렇다면 당신 역시 ‘외향적인 내향인’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침묵은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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