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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내리던 밤, 아버지가 건넨 따뜻함

by 봄날의꽃잎

첫눈이 오는 날은 늘 마음이 들썩인다.

아침부터 공기가 조금 더 맑고,

바람은 한 단계 느려지고,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갑자기 흰 빛을 품는다.


눈송이는 처음엔 조심스러운 사람처럼

살짝 머뭇거리다가,

곧 하늘이 마음을 정한 듯

조용하고 단단하게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나는 늘 같은 기분이 든다.

겨울이 온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내려오는구나 하고.


첫눈이 내릴 때면

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짊어졌던 무게,

말없이 삼켰던 피곤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늘 자신보다 일을 먼저 택해야 했던 삶의 속도.


그 무게를 나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눈송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 아버지의 어깨가 떠오른다.


어린 날의 어느 첫눈 오는 밤,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얼큰하게 취한 얼굴,

코끝은 바람에 시려 빨갛고,

옷깃과 머리에는 눈송이가 소복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두 손을 뒤적이며

뭔가를 꺼내 들었다.

젖어버려 모양이 흐트러진 종이봉지.

봉지 겉에는 눈이 녹아 물얼룩이 생겨 있었고

잡는 힘만 조금 세어도

찢어질 만큼 약해져 있었다.

아버지가 내민 봉지 안에는

이미 다 식어버린 붕어빵이 들어 있었다.

김도 사라졌고,

겉은 축축했고,

팥은 굳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그 붕어빵은 이상할 만큼 맛있었다.

뜨겁지 않아도,

바삭하지 않아도,

심지어 식어서 팥이 굳어 있어도

그날의 붕어빵은

이 세상 어떤 겨울 간식보다 따뜻했다.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버텨온 시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준 사랑,

손끝에서 겨우 남아 있던 온기까지

그 한 봉지 안에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붕어빵도 참 다양하다.

슈크림, 고구마, 초코, 심지어 피자 맛까지.

아마 아이들은 지금 시대의 붕어빵을 더 좋아하겠지.

나도 그런 새로운 맛들을 먹으며

그 시절의 나를 웃게 해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리 새로운 맛을 먹어도

마지막에 남는 건

아버지가 사 들고 오던 그 식은 붕어빵의 맛이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했던,

세상에서 제일 미지근했던 맛.

그리움이라는 맛.


첫눈 오는 날이면

나는 지금도 붕어빵을 산다.

손안에 남는 온기는 예전보다 약하지만

그 따뜻함을 꼭 쥐고 있으면

아버지가 골목을 걸어오던 그 밤의 기척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눈은 매해 새롭게 내리는데

아버지가 준 사랑은

한 번도 식은 적이 없다.


그래서 첫눈은,

나에게 늘 아버지의 온도로 내린다.

그리고 그 온도 덕분에

나는 또 한 해의 겨울을

천천히 건너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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