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건,
어쩐지 ‘줄어드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젊음이 지나가고,몸이 예전 같지 않고, 무언가를 시작하려다가도 한 박자 늦게 마음이 따라오는 것 같고.
그런데 요즘은 나이 든다는 걸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먼저 실감한다.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한참을 서 있다가
“내가… 뭘 꺼내려고 했지?” 하고 멈추는 순간.
분명 급하게 뭔가 하려고 일어났는데
거실에 도착하자마자
그 이유가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 같은 순간.
휴대폰을 찾느라 집안을 한 바퀴 돌다가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을 보고
혼자 피식 웃는 순간.
메모를 해두지 않으면
내가 나를 놓칠 것 같아서
자꾸만 종이에 적어두는 버릇이 생기는 순간.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
어쩐지 마음 한쪽이 슬쩍 시큰해진다.
‘아, 나도 이제…’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까지 갔다가
괜히 아무 일 아닌 척 다시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오늘, 이 문장을 필사하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나이 든다는 것은
마냥 시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와 매력, 지혜
그리고 고유한 슬픔을 지니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따라 쓰다 보니
내가 겪는 작은 ‘깜빡함’도
그저 속상한 일이기만 한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조금씩 비워지는 대신,
내 마음에는 다른 것들이 채워지고 있으니까.
예전엔 별일 아닌 일에 쉽게 예민해졌다면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한 번 더 넘어갈 줄도 알게 되었고,
예전엔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오래 품었다면
지금은 상처를 들고 있는 내 손이 먼저 아파서
조용히 내려놓는 법도 배우게 됐다.
나이 든다는 건 확실히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일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고유한 슬픔’도 생긴다.
그 슬픔은 어떤 날은 피곤함으로 오고.어떤 날은 허전함으로 오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마음이 축축해지는 기분으로 온다.
괜찮은데… 괜찮은데…
왜 이렇게 마음이 시큰하지?
그런 날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슬픔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슬픔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애써왔는지,
얼마나 책임을 지고 살아왔는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일 수도 있으니까.
나이 든다는 건 시드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결이 생기는 일.
그 결은 빛나는 날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흔들렸던 날, 망설였던 날,
그리고 냉장고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그런 날들까지 다 모여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오늘은
나이 든다는 것을 이렇게 적어본다.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잊지만,
그만큼 더 자주 돌아본다.
나는 예전보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만큼 더 사람답다.
나이 든다는 것은
마냥 시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와 매력, 지혜, 그리고 고유한 슬픔을
내 안에 차곡차곡 지니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