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가을이 왔다

우리가 익어가는 오늘, 이야기

by Carol


미국에서 돌아온 우리가 정착한 곳은 신도시 내의 타운하우스다. 미국에 가기 전 원래 살던 동네와 가까운 곳이자, 떠나온 미국에서의 생활과도 가까운 곳.


우리 집에서 아이들 유치원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아침저녁으로 걸어서 함께 등하원을 하며 손도 맞잡아부비고, 햇살과 바람과 비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이 거의 비슷한 일상이지만, 하루 이틀 새 자라나는 아이들의 생각을 실컷 듣고 함께 변하는 계절을 느끼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오늘은 하원길에 유치원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좀 놀다 가고 싶다기에 그러자고 했다. 그네도 제법 서서 타고, 놀이 기구들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이제 정말 어린이가 다 되었다 싶어서 또 자랐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잠겨있는데 갑자기 제아가 어디서 바짝 마른 나뭇잎을 주워오더니 대뜸 "엄마 냄새 한 번 맡아봐" 했다.

진갈색으로 변한 낙엽에 벌레라도 있을까 맡는 둥 마는 둥 하며 돌려주려 했더니 "맡았어? 무슨 냄새나?" 하기에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좀 더 자세히 맡아보란다. 하는 수 없이 코밑에 나뭇잎을 대고 숨을 들이마시니 꽤 뭉근하고 따스한 잎향이 코에 스몄다. "음~향긋한데?" 했더니 "그렇지 엄마? 꿀 향이 나지? 신기해" 란다. 꿀 향.


우리 제아는 원목 서랍의 나무냄새에서 소세지향을 떠올리고, 바싹 마른 낙엽에서 꿀을 그려내는 상상력 풍부한 어린이로 자라고 있구나 싶어 새삼 뭉클하고 귀여웠다.


잘 마른 나뭇잎엔 그간 머금은 햇살의 냄새가 새겨져 있다. 낙엽에도 나뭇잎의 일생이 들어있는 셈이다. 가끔 비가 오고 젖었다가도 바람이 물기를 털고 햇볕이 바작바작 닿아 적절한 속도로 천천히 마른 잎에선 그간 담고 누린 햇볕의 향이 , 아무도 다치지 않은 깊이 있는 세월의 향이 달큼하게 난다. 마치 햇볕을 닮은 꿀처럼.


아이는 이미 온몸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며 세상을 알아간다. 언젠가는 조급히 성숙하려다 부패해 버릴 수 있다는 이치도 깨닫게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어린이들이 성숙하거나 부패한 것들이 실은 같은 출발점을 지닌다는 것도, 누구를 만나 어떤 선택을 하고 세상에 어떤 결과물을 선사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를 달리 인정받는다는 사실도 꼭 알게 되기를 바라본다. 그때까지 나는 어린이들과 함께 매일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우리의 속도로 익어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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