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향기가 기억을 부를 때
올해 여름엔 로아제아와 우리 부부, 엄마아빠와 이모 부부까지 대가족이 코타키나발루로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미국에 살며 다닌 미국 국내여행을 제외하고는 진짜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이어선지 어린이들은 출발하면서부터 잔뜩 신나 했고, 꽤나 더웠음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모든 일정을 눈을 반짝이며 함께 즐겨 주었다.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온 지 한 달도 넘게 지난 어느 날, 제아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며 물에 젖은 팔을 후후 불어대더니 코로 킁킁 공기 냄새를 맡다가, 또 후 하고 물기를 불며 히히 웃었다. 그러더니 내게 "엄마 이렇게 하면 코타키나발루 냄새랑 느낌이 나" 했다.
향기는 기억된다. 어떤 장소나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처럼 떠올리는 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향기 자체가 뇌에 새겨진다. 그래서 오히려 잊었던 일이 향기로 인해 떠올려지기도 하고, 언제 어디서였는지는 몰라도 그냥 '아는 향'이란 것을 확신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그때의 감정을 통해 향기를 기억하는 일은 일차원적이고 단편적인 향기들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절로 터득하게 한다.
얼마 전 '오래된 편지'라는 이름의 향수를 시향해 보았다. 조금 마른듯한 풀내음으로 시작해 화한 나무냄새가 퍼지는데 가만히 맡아보면 볼펜으로 써 내려간 엽서의 향 같은 뉘앙스가 느껴진다. 조금 시간이 지난듯한. 마치 우체통에서 꺼내져서 내게 전달되어 온 그 옛날 편지 같은 향. 하지만 향의 스토리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그냥 시향 해보라고 하면 '셀러리'라고 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픽 웃었다.
우리 제아에게 코타키나발루에서의 휴가는 온종일 뜨거운 날씨에 바다에서, 풀장에서 놀고 배도 탔다가,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며 바람에 몸을 말렸다가 오후 무렵 향긋한 주스 한 잔과 노을에 행복했던 기억인 걸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 아이가 손을 씻다 팔에 물이 묻어 후후 털어내다가도 더운 나라의 물기냄새를 품은 향긋한 바닷바람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된 것일까 생각하니 이내 다음 여행은 또 어디로 떠나볼까 기대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