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종착역을 향한 동행

실존주의적 연민

by 뉴욕 산재변호사

살아가다 보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동시에 미움과 갈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들도 마주하게 된다.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은 이처럼 다채롭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문득, 우리 모두가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에 함께 탑승한 동승객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 미움의 감정은 희미해지고 깊은 연민의 감정이 싹튼다. 이러한 깨달음은 실존주의 철학의 렌즈를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실존주의는 인간이 세상에 '던져진(Geworfenheit)' 존재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 속으로 내던져진다. 그리고 이 삶은 유한하며, 그 끝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라는 절대적이고 피할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우리는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이다. 이 냉혹한 진실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극단적인 고독과 불안을 느끼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모두가 같은 조건 아래 놓여 있다는 보편적인 연대감을 형성한다.


우리가 미워하는 그 사람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뇌하고, 존재의 무의미함 앞에서 번뇌하며, 결국은 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들의 삶 속에도 우리처럼 좌절과 상처, 그리고 슬픔이 존재하며, 때로는 그들의 미움조차도 자신의 유한한 존재를 방어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일 수 있다. 그들은 우리처럼 언젠가는 이 기차에서 내려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그들의 서툰 행동과 거친 말이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불안정한 존재가 세상과 부딪히며 내는 비명처럼 느껴질 수 있다.


까뮈는 삶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부조리함 속에서 '반항'과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 평등함은 곧 우리가 서로에게 깊은 이해와 연민을 보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각자의 고독한 여정 속에서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잠시나마 같은 기차 안에서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


미움은 타인과의 간극을 더욱 벌리고 고통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공통된 운명 앞에 선 우리 모두의 나약함과 유한성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존재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이에게뿐만 아니라, 미운 이에게도 확장되는 이러한 연민이야말로 실존의 불안 속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인간애이자, 짧은 여정을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같은 기차를 탄 여행객이며, 언젠가 올 마지막 역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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