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적 연민
살아가다 보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동시에 미움과 갈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들도 마주하게 된다.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은 이처럼 다채롭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문득, 우리 모두가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에 함께 탑승한 동승객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 미움의 감정은 희미해지고 깊은 연민의 감정이 싹튼다. 이러한 깨달음은 실존주의 철학의 렌즈를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실존주의는 인간이 세상에 '던져진(Geworfenheit)' 존재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 속으로 내던져진다. 그리고 이 삶은 유한하며, 그 끝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라는 절대적이고 피할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우리는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이다. 이 냉혹한 진실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극단적인 고독과 불안을 느끼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모두가 같은 조건 아래 놓여 있다는 보편적인 연대감을 형성한다.
우리가 미워하는 그 사람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뇌하고, 존재의 무의미함 앞에서 번뇌하며, 결국은 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들의 삶 속에도 우리처럼 좌절과 상처, 그리고 슬픔이 존재하며, 때로는 그들의 미움조차도 자신의 유한한 존재를 방어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일 수 있다. 그들은 우리처럼 언젠가는 이 기차에서 내려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그들의 서툰 행동과 거친 말이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불안정한 존재가 세상과 부딪히며 내는 비명처럼 느껴질 수 있다.
까뮈는 삶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부조리함 속에서 '반항'과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 평등함은 곧 우리가 서로에게 깊은 이해와 연민을 보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각자의 고독한 여정 속에서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잠시나마 같은 기차 안에서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
미움은 타인과의 간극을 더욱 벌리고 고통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공통된 운명 앞에 선 우리 모두의 나약함과 유한성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존재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이에게뿐만 아니라, 미운 이에게도 확장되는 이러한 연민이야말로 실존의 불안 속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인간애이자, 짧은 여정을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같은 기차를 탄 여행객이며, 언젠가 올 마지막 역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