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cm의 동지들: 키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집착

by 뉴욕 산재변호사

영화배우 이연걸, 톰 크루즈, 가수 임창정, 신해철, 개그맨 허경환, 그리고 축구선수 메시.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프로페셔널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들 외에 또 하나의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키가 170cm 내외라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 선다면, 시선이 완벽하게 평형을 이룰 것 같은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학창 시절, 나는 작은 키 때문에 열등의식을 자주 느꼈다. 데이트 신청을 시도하려 해도 키 이야기가 나오면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키'라는 신체적 조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뇌과학자들은 흥미로운 설명을 제공한다. 현대인의 뇌는 여전히 원시시대 인류의 뇌와 구조적으로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며, 놀랍도록 진화가 더디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크로마뇽인을 훈련하면 비행기 조종도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우리의 깊은 본능과 인지 구조가 수만 년 전 수렵 채집 시대의 생존 환경에 여전히 뿌리박고 있음을 시사한다.


원시시대의 생존 원칙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무조건 신체적 조건이 우수해야 했다. 그래야 먹이를 효율적으로 사냥하고, 맹수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며, 다른 부족과의 거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강한 신체적 능력, 특히 키와 같은 외형적 우월성은 번식 성공률에도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키가 크고 힘이 강한 개체는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우월한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조건들이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의 뇌에 깊이 각인되어 본능적인 선호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더 이상 신체적 능력이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인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지능, 사회성, 창의력, 정보 처리 능력 등이 개인의 성공과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 키에 본능적으로 집착한다. 길을 걷다 무의식적으로 키 큰 사람에게 시선이 가는 것이나, 이상형을 말할 때 키 조건을 빼놓지 않는 것들이 그 예시다. 복근이나 근육질 몸매에 대한 현대 사회의 맹목적인 집착 또한 이러한 원초적인 생존 본능의 변형된 발현이 아닐까 한다. 강인한 육체가 곧 생존과 번식의 유리함으로 직결된다는 원시적 믿음이 현대에 와서 미학적 기준으로 둔갑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키와 근육질 몸매에 대한 인간의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바로 원시시대의 선조들과의 완전한 심리적 단절에 있다고 본다. 이는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 본연의 진화적 산물인 만큼 완전히 소멸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집착이 우리의 생존에 더 이상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맹수와 싸우거나 사냥을 위해 키가 크고 근육질이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진정한 자존감과 행복은 유한한 신체적 조건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면적 가치, 지적 능력, 그리고 타인과의 공감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뇌가 아직 원시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지만, 이성적 인식을 통해 그 그림자를 희미하게 만들고, 진정한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현대인을 위한 새로운 진화의 시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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