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분산과 방관자 효과
우리 로펌 사무실은 늘 전화 통화로 분주하다. 보험사, 상대 로펌, 그리고 법원에서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들을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많다. 이때 사무실 내 방송 시스템에서 자주 울려 퍼지는 한마디가 있다. "누구 아무 변호사나 전화 좀 받아주시겠어요?" 이 '누구 아무나'라는 표현은 들을 때마다 불편함을 지울 수 없다. 나 자신도, 우리 로펌에 근무하는 직원 누구도 '누구'라는 불특정한 존재가 아닌데, 마치 책임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추상적인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개 변호사님, 전화 받아 주세요."처럼 특정 개인을 지목하는 것이 훨씬 직접적이고 명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작은 언어적 차이가 심리학적으로 어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저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의 연구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 소개된 여러 연구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는 낯선 환경이나 위급 상황에서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도움을 제공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현상을 의미한다. 치알디니는 길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아무도 돕지 않는 상황을 예시로 들며, 익명 속에 섞인 군중은 각 개인이 책임을 분담하여 느끼는 '책임감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때문에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다른 누군가가 돕겠지", "내 책임은 아니야"와 같은 생각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결국 아무도 행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는 1964년 뉴욕에서 발생한 키티 제노비스 살인 사건처럼 충격적인 사례들을 통해 더욱 부각되었다.
우리 로펌 사무실의 "누구 전화 좀 받아주시겠어요?"라는 방송은 이러한 책임감 분산의 미묘한 언어적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누구"라는 호칭은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그 전화를 받아야 할 의무가 모든 사람에게 고루 분산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내가 꼭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각 개인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어, 누구도 선뜻 전화를 받으려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모두가 '누군가 받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아무도 행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다른 누군가가 돕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는 방관자 효과와 유사한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반면, "박희철 변호사님, 전화 받아 주세요."와 같이 특정인의 이름을 부르거나 "한국어 가능하신 박희철 변호사님, 전화 부탁드립니다"처럼 특정 능력을 가진 사람을 명확히 지목하는 것은 책임감 분산을 방지하고 개인의 책임감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지목받은 사람은 자신이 그 상황에서 행동해야 할 명확한 주체임을 인지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미룰 수 없는 직접적인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치알디니가 설득의 원칙 중 하나로 제시하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와도 연결될 수 있는데, 명확한 지시는 행동의 표준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특정인의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로펌 사무실의 작은 방송 한마디에서 드러나는 '누구'와 '아무개 씨'의 차이는 단순한 언어 습관을 넘어선 심리학적 의미를 내포한다. 불특정한 '누구'에게 요청하는 것은 책임감 분산을 야기하여 효율성을 저해하고, 때로는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특정 개인을 지목하여 명확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각성된 책임감을 유발하여 상황에 대한 주체적인 개입을 유도한다. 이는 조직 내 효율성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위급 상황에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심리학적 원리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타인의 행동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항상 숙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