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 적부터 과일을 먹을 때 으레 껍질을 벗겨야 한다고 배운다. 사과를 깎고, 배는 물론 포도조차 알맹이만 쏙 빼먹는 것이 익숙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왜 우리는 과일 껍질을 먹지 않을까? 저속노화 분야에 있어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계시는 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님에 따르면, 사실 과일 껍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비타민, 섬유질,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심지어 과육보다 껍질에 더 많은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 껍질에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인 퀘르세틴이, 포도 껍질에는 심장 건강에 좋은 레스베라트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습관처럼 껍질을 벗겨내고, 어쩌면 가장 좋은 부분을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고 있다. 왜?
과일 껍질을 먹지 않는 데는 단순히 '관습'을 넘어선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가장 큰 이유는 위생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과일은 재배 과정에서 해충과 질병을 막기 위해 농약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수확 후 꼼꼼한 세척 과정을 거치지만, 껍질에 미량의 농약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유기농 과일이 아닌 이상, 껍질을 벗겨 먹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유통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고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껍질 표면에 세균이나 먼지 같은 이물질이 묻을 수 있다는 점도 껍질을 꺼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아무리 깨끗하게 세척해도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 것이다.
특정 과일의 껍질은 그 자체의 식감이나 맛 때문에 먹기 어렵다. 바나나 껍질은 질기고 쓴맛이 강하며, 오렌지나 자몽 같은 감귤류 껍질은 두껍고 특유의 향이 강해 보통 섭취하지 않는다. 키위는 그 특유의 잔털의 느낌 때문에 거부감이 들고, 파인애플 껍질은 너무 거칠고 딱딱해서 아예 먹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껍질의 물리적인 특성과 맛 자체가 섭취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드물지만 일부 과일 껍질에는 소화를 방해하거나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민감한 사람은 껍질 섭취 후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 회피하기도 한다.
질문에서 언급했듯이, 과일 껍질을 벗겨 먹는 행위는 어쩌면 '생각 없이 받아들인 관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또 다른 흥미로운 관습을 꼽자면 생일에 케이크를 먹고 초를 켜는 것이다. 생일 케이크와 촛불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던 둥근 꿀 케이크와 촛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당시 촛불은 소원을 빌고 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성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종교적인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생일이 되면 으레 케이크를 준비하고 나이를 나타내는 초를 꽂아 불을 붙인 뒤 소원을 빌고 끄는 행위는 전 세계적인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왜 굳이 케이크여야 하는지, 왜 초를 켜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말이다. 이처럼 생일 케이크 관습 또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문화적 행동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관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과일 껍질을 먹지 않는 것은 위생, 식감, 맛, 특정 성분과 같은 현실적인 제약과 더불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관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껍질에 풍부한 영양소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깨끗하게 세척하여 섭취 가능한 과일의 껍질은 식단의 좋은 부분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거부가 아닌, 합리적인 판단과 새로운 시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