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산은 "시간"이라고.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격언이다. 사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르는 물리적 실체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때때로 시간이 제멋대로 흘러간다고 느낀다. 김창옥 강사는 강연에서 시간이 유독 느리게,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흘러가는 두 가지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넘어지거나 다치는 순간이다. 이 놀라운 현상 뒤에는 우리의 뇌가 가진 신비로운 작동 방식이 숨어 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유는 강렬한 감정의 각성 상태와 관련이 깊다. 새로운 사람에게 강렬하게 끌릴 때 뇌는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며 쾌락과 보상을 느낀다. 이러한 화학적 변화는 뇌의 시간 지각 시스템을 교란하여, 평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처리하게 만든다. 수많은 새로운 감각, 생각, 감정들이 순식간에 밀려들어 오면서 뇌는 이 모든 정보를 상세히 기록하려 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장면을 담으려는 카메라와 같다.
사고가 날 때나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가 고통을 견딜 때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은 우리 뇌의 진화적 책략으로 알려져 있다. 위험 상황에서 뇌는 생존을 위해 극도로 민감해진다. 모든 감각 정보가 최고조로 활성화되며, 뇌는 이 위협적인 순간을 가능한 한 자세히 기억하려 노력한다. 이는 나중에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기억을 바탕으로 더 잘 대처하고, 다시는 같은 사고를 겪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방어 메커니즘이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진되고, 뇌의 정보 처리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면서 실제 시간보다 더 많은 경험이 압축되어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시간의 이중성을 이미 꿰뚫어 보고 시간을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생각했다. 하나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다. 우리가 시계로 측정하는 객관적이고 연속적인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 즉 기회나 적절한 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Kairos)**다. 카이로스는 주관적이며, 물리적인 길이보다는 질적인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간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나 위급한 사고의 순간은 크로노스적으로는 짧지만, 카이로스적으로는 매우 길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시간이 천천히 가고,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감을 느끼는 현상 또한 흥미롭다. 물리적 시간은 똑같은데 말이다.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는 이를 우리 뇌가 '사진 찍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어렸을 때는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호기심의 대상이므로, 뇌가 주변의 모든 사건과 현상을 '촘촘히 여러 장의 사진'처럼 기록한다. 다양한 체험과 새로운 정보가 가득 담긴 사진첩이 두꺼워질수록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익숙한 환경에서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뇌는 이미 아는 정보나 익숙한 경험에 대해서는 '사진을 듬성듬성' 찍거나 아예 찍지 않게 된다. 뇌 속의 사진첩이 얇아질수록 그만큼 경험의 밀도가 낮아지고, 마치 축지법을 쓴 것처럼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시각적 정보의 새로움이 시간 지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들이 있다.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시각적 자극(새로운 이미지 vs. 반복되는 이미지)을 보여주고 시간 길이를 추정하게 했을 때, 새로운 정보가 제시될수록 참가자들은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고 보고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뇌가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인지 자원을 할당하고, 그 결과 시간 인식이 확장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한, **'경험의 밀도가 시간 지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서도, 특정 시간 동안 경험한 사건의 수가 많을수록 그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는 결과들이 보고된다. 이는 김대식 교수의 '사진 찍기' 비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김대식 교수의 제안처럼, 이제는 자기 인생의 감독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를 찍을 때 "컷"을 외치며 장면을 조절하고, 어떤 장면을 길게 담고 어떤 장면을 생략할지 결정하는 감독처럼 말이다. 즉, 익숙함에 젖어 시간을 듬성듬성 흘려보내기보다는, 의식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의미 있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삶의 밀도를 높여나가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도 풍요로운 카이로스의 순간들을 창조하고, 후회 없는 삶이라는 영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 영화에서 어떤 장면들을 촘촘히 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