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속 웅녀의 마늘과 한민족 정신

인내와 변혁의 상징

by 뉴욕 산재변호사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이다. 그 중심에는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웅녀의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건국 신화를 넘어, 한민족의 정신적 뿌리와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서사로 여겨져 왔다. 칼 융의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신화는 특정 민족이 공유하는 집단무의식 속 깊이 자리 잡은 원형(archetype)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웅녀가 마늘을 먹으며 견뎌낸 백일간의 인내는 한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와 해석은 신화 속 '마늘'의 실체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삼국유사』 원문에 등장하는 한자 '蒜(산)'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마늘(大蒜)'뿐만 아니라 '달래(小蒜)'를 포함한 다양한 파속 식물을 의미하였다. 더욱이 현재의 마늘은 단군신화의 시기보다 훨씬 후대인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웅녀가 먹은 것이 사실은 '달래'였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며, 일제시대 근대 번역 과정에서 '蒜'이 '마늘'로 오역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다만 이것이 '일제시대 왜곡'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오역의 확산에 당시 시대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으나, 일제의 직접적인 의도적 왜곡으로 단정하기에는 추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마늘'이든 '달래'든, 신화 속 식물의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웅녀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웅녀가 겪은 인내와 변혁의 과정이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 아래, 곰은 본능적인 삶을 포기하고 좁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쑥과 매운 식물만을 먹으며 백일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냈다. 이 과정은 고통과 유혹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정화하며, 마침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고귀한 희생과 의지를 상징한다. 이러한 변혁의 서사는 한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 원형적 경험으로, 민족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인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웅녀의 인내와 기상은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정신과 맞닿아 있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내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온 역사,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모색해 온 한민족의 모습은 웅녀의 인내와 변혁의 서사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때로는 강렬하고 매운 '마늘'처럼 강인하게, 때로는 은은하고 향긋한 '달래'처럼 유연하게, 우리 민족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생존하고 발전해 왔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김치 등 마늘이 주재료로 들어간 발효식품을 즐겨 먹는 한국인들이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강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는 과학적 근거를 떠나, 마늘로 상징되는 강인함과 전통 식문화가 위기 상황에서 민족적 자부심과 회복탄력성의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웅녀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인내의 가치, 자기 극복의 중요성,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변혁의 의지를 일깨워주는 살아있는 상징이다. 신화 속 '마늘'의 실체에 대한 논의를 넘어, 웅녀가 보여준 끈질긴 생명력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야말로 한민족 정신의 진정한 근원이며, 우리가 앞으로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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