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끝까지 놓지 않는 정신 에너지
직원이 근무 도중 업무와 연관된 일을 하다가 사고가 일어날 경우, 그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 산재보험 사건은 출생의 기회가 부여됩니다. 마치 엄마 뱃속에서 잉태되는 아기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직무 관련 사고를 당하고서도 클레임(행정법원과 산재 보험사에 사고에 관한 치료와 보상을 청구하는 절차)을 하지 않으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아기와 같이 그 시건은 사라지고 맙니다. 산모가 분만의 고통을 인내할 때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신생아처럼, 청구인이 클레임을 할 때야 비로소 그 직무 관련 사고는 사건으로서의 법률요건을 갖추게 되고, 그 시건의 생일은 바로 사고 날짜가 됩니다. 장성해 가는 아이가 세상의 풍파를 겪듯, 한번 태어난 사건도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됩니다. 변호사의 역할이란 결국 각 사건이 부딪힐 어려움마다 청구인의 길동무와 말동무가 되어 더 나은 길로 안내하는 길잡이 혹은 조언자의 그것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면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듯이, 사건도 그것을 종결짓는 순간이 언젠가는 반드시 오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다 같지가 않아 어떤 사람은 평균보다 안락한 삶을 살다 가고, 어떤 사람은 평균보다 힘든 삶을 살다 갑니다. 사건들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사건들은 평균보다 쉽게 가는 반면, 어떤 사건들은 평균보다 더 많은 난관을 지나야 하지요. 변호사로서 모든 사건들이 귀하고 소중하나, 제게 더 많은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평균보다 어렵게 가는 사건들입니다. 평균보다 어렵게 가는 사건의 주인 되는 청구인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왜 나의 대체 임금은 다른 사람들처럼 나오지 않는 것인가?”, “왜 나의 수술은 다른 사람들처럼 허가가 되지 않는 것인가?”, “왜 나의 보상은 다른 사람들보다 적거나 안 나오는 것인가?” 그 청구인들의 부정적 감정의 배설구가 된 저는 그분들을 위로하고 조언하기 위해 평균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는데, 심할 경우 때로는 그 사건으로부터 도망쳐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 청구인이 제발 좀 변호사를 바꾸셨으면”하는 것이지요. 변호사 윤리법에 따라 변호사는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어떤 의뢰인과의 계약 관계를 파기할 수 있으며, 의뢰인도 여러 가지 이유로 언제든 변호사와의 계약 관계를 파기하고 새로운 변호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청구인과의 동행이 너무 힘들어질 때, 전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제 자신에게 속삭입니다. 메멘토 모리란 “그대는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로서 로마 공화정 시절의 개선식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허락되는 개선식은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탄 채 온 시민의 환호성을 받으며 시내를 행진하는 화려한 의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대접을 한 몸에 받게 된 장군은 너무 우쭐된 나머지 자칫 자신을 신과 동급으로 여기는 자만심에 빠질 수 있었는데요. 이런 까닭에 이 개선식의 마차에는 노예 한 명을 그 개선장군과 같이 탑승하게 하고, 이 노예는 개선식 동안 끊임없이 메멘토 모리를 개선장군에게 속삭이게 했던 것이지요. 행진 중 메멘토 모리를 듣는 개선장군이 승리에 너무 도취되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메멘토 모리를 속삭여주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이 아닌 노예를 사용하는 까닭은 고귀한 신만이 탑승하는 신의 전차보다 그 급을 낮추기 위해서였다고 하네요. 개선장군에게 수여되는 관에는 추가로 이런 경고 문구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Memento te hominem esse)”, “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Respice post te, hominem te esse memento).”
모든 생명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생을 다하는 마지막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느 한 사건도 한번 태어나면 그 끝이 있는 까닭에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진행되는 순간마다 마주하게 되는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 역시 사건이 끝이 있음으로 인해 청구인과 변호사 모두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평균보다 어려운 사건을 대하며,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메멘토 모리는 저에게 “이 사건을 해나가며 겪는 어려움도 그 마지막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사건이 끝날 때까지 이 청구인의 손을 놓지 말고, 변호사의 예의를 다 하자.”가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