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의 통증, 그리고 거울 뉴런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나나나나.” 러시아의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작품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시의 언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야 할 시인이 재미있게도 ‘나나나’의 연속으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신의 섭리에 관한 찬양도,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탄사도, 사랑에 대한 아픔도,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는 회한도 모두 나 자신이 홀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이고, 그 주관적인 경험을 표현할 때 ‘나’보다 더 잘 표현할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시인은 ‘나나나’로 연속된 시어를 통해 세상의 주체인 ‘나’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었겠지요.
근로 중 직무 과련 상해를 당하여 찾아오는 제 의뢰인들은 당신들의 신체적, 정신적 통증을 제게 호소합니다. 제가 그분들의 통증을 다 이해할리 만무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러하신 까닭은, 변호사라면 으레 당신들의 사건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하지만, 법률전문가들이 그분들의 통증을 이해하는 방식은 의사들의 리포트(medical report)와 증언 녹취 (testimony)와 같은 서면 자료를 통해서입니다. 의뢰인들은 자신들의 통증을 법률대리에 잘 활용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그 통증을 변호사인 제게도 호소한 것이었겠습니다만, 그분들의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주관적인 통증을 제가 다 느낄 수 없는 한계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저는 그분들의 음성과 어조, 표현을 통해 그분들의 주관적 통증을 파편적으로나마 이해합니다. 그로부터 얻은 공감은, 그분들의 파일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 보고, 히어링에서 그분들의 대표로서 판사와 보험사 쪽 변호사를 대하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판사와 보험사 쪽 변호사는 여전히 의사들의 리포트와 증언을 통해 청구인(저에게는 의뢰인)의 통증을 이해할 뿐입니다. 저와 같이 청구인과 직접 대화하며 그분들의 통증을 공감할 기회를 판사와 보험사는 가질 수 없는 것이지요. 판사와 보험사는 청구인의 통증을 의사들의 리포트와 증언을 통해서만 엿볼 수 있도록 뉴욕 산재보험 시스템은 되어 있습니다. 객관성 확보라는 면에서는 일정 순기능이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청구인의 주관적 통증을 공감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인간의 기본적 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 공감 능력은 우리 신체에 그러한 능력을 갖도록 한 하드웨어가 이미 존재함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옆 사람이 하품을 하면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서 하품을 하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뉴런이란 신경계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신체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위로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데, 각각의 뉴런은 시냅스를 통해 수천, 수만 개의 다른 뉴런들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특히, 거울 뉴런은 그 이름처럼 다른 사람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한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그것은 특정 움직임을 행할 때나 다른 개체의 특정 움직임을 관찰할 때 활동하는 신경세포입니다. 하품의 전염 현상뿐만 아니라,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울거나 슬퍼하면 나도 슬퍼하는 공감 능력, 부부이나 오랜 연인들이 서로 닮아가게 되는 모든 현상이 이러한 거울 뉴런이 반응하는 현상입니다.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들은 거울 뉴런이 단순한 행동의 모방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서는 감정의 공감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에도 관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 유리잔을 들어 냄새를 맡으며 역겨워하는 장면을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 주자, 이 사람들은 실제로 냄새를 맡은 것이 아님에도 동일한 구토 반응을 보였고, 그들의 뇌를 fMRI(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로 촬영한 결과 대뇌의 같은 부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반면에 뇌졸중으로 이 부분이 손상된 사람은 똑같은 장면을 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거울 뉴런은 초기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며, 고등 문화의 향유를 가능하게 하는 등, 인간이 인간으로서 발전하고 기능하기 위하여 쌓아 온 진화적 결과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거울 뉴런에 의존하여 제 의뢰인이 호소하는 주관적 통증을 공감은 하지만, 똑같이는 느낄 수는 없는 한계를 탄식하며,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나나나’ 시로서 그 한계에 대한 위로를 삼습니다.